6월2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이 시민모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정부가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해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피해자와 유족들을 겨냥해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공탁을 하면 채무자의 채무가 면제되기 때문에 일본 전범기업의 채무를 면제해주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채권을 소멸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인 피해자는 일본 기업의 직접 배상을 요구하고, 대법원 판결도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못박았는데, 정작 정부는 일본 기업들의 법적 책임을 면해주려고 안달이 난 것 같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가.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강제동원 판결금 공탁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많다. 정부는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4명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변제하는 판결금을 수령하지 않자, “이미 정부로부터 변제금을 수령한 11명의 피해자들과 형평성 등을 고려해” 공탁을 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최근까지 피해자 설득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정부가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가 소수만 남게 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제3자’에 의한 공탁은 채권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효력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게 다수설이다. 더욱이 피고인 일본 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채무의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정부의 공탁은 채무자인 일본 기업의 의사에도 반하는 것이다. 우리 민법(469조)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광주지방법원이 4일 양금덕 할머니의 소송과 관련해 정부가 신청한 공탁을 수리하지 않은 것은 이런 사정을 감안한 당연한 결정이다. 외교부는 헌법상 보장된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유례없는 일”이라고 반발했지만, 일본 전범기업을 위해 자국 국민의 권리를 소멸시키려는 행위야말로 전례가 없는 처사다.
정부의 ‘막무가내식 공탁’에 시민들은 모금운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판결금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와 유족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선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모금을 시작한 지 이틀 만인 4일 현재 모금액이 1억원을 넘었다. 특히 정부의 판결금 공탁 소식이 전해지자 모금 참여 건수가 200여건에서 하루 만에 1400여건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명예를 지키는 데 쌈짓돈을 털어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까지 침해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