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강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7일 해양경찰 등 구조대원들이 도보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주말 전국을 덮친 물난리로 17일 오후 8시 현재 41명이 목숨을 잃고 9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도 34명에 이른다. 서울 우면산 산사태가 일어났던 2011년 호우와 태풍으로 78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다. 근래에도 2020년 46명, 지난해 30명이 수해로 숨지거나 다쳤다. ‘후진국형’ 재난인 물난리에 오히려 갈수록 취약해지는 형국이다.
이는 기후위기와 떼놓고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장맛비의 양상이 과거의 패턴을 벗어난 지는 오래다. 2020년에는 54일에 이르는 가장 긴 장마를 기록했다. 과거의 평균 기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새로운 특성으로 대두했다. 1991~2020년 장맛비는 평균 31일에 걸쳐 중부 378㎜, 남부 341㎜를 기록했는데, 지난 14일 이후 사흘 동안 충남 청양 545㎜, 공주 490㎜, 전북 익산 471㎜가 쏟아졌으니 ‘물폭탄’이라는 말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난 3월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낸 기상청은 “이제는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 상황이 다가왔다”고 평가했다.
자연의 경고는 충분했다. 그러나 대비는 굼뜨기만 하다. 불과 3년 전 부산 지하차도에서 폭우로 갇힌 시민 3명이 숨지는 사고를 겪고도 이번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에서 더 큰 비극이 일어났다. 그러고도 지자체는 ‘매뉴얼 타령’을 하고 있다. 있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집중호우에 대비한 매뉴얼이 부실한 것 자체도 직무유기이다. 부산 사고 이후 대책 마련과 시행에서 정부와 지자체 모두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또 경북에서 이번 폭우로 산사태가 나 인명피해를 입은 10곳 가운데 도가 관리하는 산사태 취약지역(4900여곳)은 한곳도 없었다. 산사태 취약지역 평가에 강우량은 포함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경북도가 호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의 주민을 강제로 대피시키는 대피 명령을 내린 것도 이미 대규모 인명피해가 난 뒤였다.
국회에는 도시 침수와 하천 범람 방지 대책을 다룬 법안들이 10여건이나 발의돼 있지만 정부의 반대에 부딪치거나 법안 처리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피해가 현실화하고 나서야 뒷북 대응에 나서고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악순환을 이번에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정부는 새롭게 대두한 집중호우라는 재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해 대비 매뉴얼을 전면 개선하고, 국회도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