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토 조선인 학살 100주년 외면한 한·일 정부, 부끄러움은 아는가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일조협회’ 등 일본 시민단체로 구성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전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10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집단학살 100주년이 한국과 일본 정부의 차가운 외면 속에 지나갔다. 한·일 시민들의 진상 규명과 사죄 요구에, 두 나라 정부는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1923년 9월1일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 속에 수천명의 조선인이 자경단과 군, 경찰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지 100년이 흐른 날, 한·일 시민들은 도쿄에서 함께 추도식을 열었다. 당시 희생된 조선인의 유족이 일본 정부에 “지금이라도 희생자, 그리고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일본 시민은 “(일본) 정부가 이런 사실을 숨긴 것에 화가 난다. 조선인 학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잘못에 대해선 정확히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조선인 학살 추모비를 만들고 50년 동안 추도식을 이어오며 망각에 맞서 싸워온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일본 우익들은 당시 학살이 ‘정당방위’였다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려 하고 있다. 이날도 우익 단체들이 추모비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진상 규명과 사죄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것 아닌가.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8월30일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2017년부터 7년째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올해 2월에는 “무엇이 명백한 사실이었는지는 역사가들이 밝혀낼 문제”라며 학살을 부정하는 태도도 보였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무관심은 더욱 개탄스럽다. 냉전 시기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 사회의 진상 규명 노력을 외면했다. 올해 3월 여야 의원 100명이 ‘간토학살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지만, 진전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화해’를 내세우며 아예 한·일 과거사 망각을 강요하고, 한·미·일 준군사동맹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한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 장군 등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지우려 하고 있다. 100년 전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간 수천명을 기억하고 다시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한·일 시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