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근 국무총리비서실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배우자의 수십억원대 회사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정부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도 배우자 주식 처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낸 상태다. 공적 직무와 사적 이익의 이해충돌을 막도록 한 공직자윤리법을 고위 공직자들이 소송을 통한 ‘시간 끌기’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고위 공직자가 3천만원을 초과한 주식을 보유한 경우, 임명일로부터 두달 안에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다. 박 실장의 배우자는 중견 건설사인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의 장녀이자 이 회사 사내이사다. 올해 3월 고위 공직자 정기 재산공개 자료를 보면, 박 실장의 배우자는 서희건설(187만2천여주)과 유성티엔에스(126만4천여주) 등 64억9천여만원 규모의 주식·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해 박 실장 배우자의 주식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하라고 통보했고, 박 실장은 이에 불복해 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총리 비서실장 직무로 취득하는 정보가 사적 이익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짚은 셈인데도, 박 실장은 행정소송으로 이 사안을 끌고 가고 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역시 배우자가 보유한 8억원대의 주식 처분 요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주식 백지신탁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처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공직자윤리법 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신청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2년 해당 법 조항의 ‘재산권 침해’ ‘연좌제 금지’ ‘평등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공직자들의 재산권을 일부 제한하더라도 이해충돌을 예방하도록 한 공직자윤리법의 취지가 정당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박 실장과 유 사무총장 모두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송전’을 택한 것은 재임하는 동안만 주식 처분을 유예하려는 꼼수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공직자윤리법에 백지신탁 조항이 추가된 것은 2005년이다. 경영권 문제 등으로 주식 처분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애초 고위 공직을 맡지 말았어야 한다. 권력과 돈을 다 가지려 현행법까지 무시하는 인사들 외에는 그 자리에 둘 인재가 그리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