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6월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왼쪽은 최재해 감사원장. 연합뉴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표적감사’ 의혹을 조사한 감사원 진상조사 티에프(TF)가 ‘전현희 사건’ 재심의와 조은석 주심 감사위원을 수사 요청하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했다. 조 위원이 제기한 ‘결재 조작’ 등의 불법 의혹에 대해서는 문제없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한다. 넉달 전 ‘불문’(책임을 묻지 않음) 처리된 감사 결과를 재심의하겠다는 것도 황당한데, 결재 과정의 불법성을 지적한 감사위원까지 오히려 ‘범죄자’로 몰아붙이다니 참으로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사건은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이 대통령실의 바람에 따라 전 정권 때 임명된 전 전 위원장을 찍어내기 위해 무리한 감사를 한 게 발단이 됐다.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가 전 전 위원장의 혐의에 대해 대부분 ‘무혐의’ 결정을 내렸는데도 최 원장과 유 총장은 마치 전 전 위원장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사무처에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고, 주심인 조 위원이 이를 결재한 것처럼 전산결재시스템도 조작했다. 최 원장과 유 총장은 이런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감사원 역사상 처음으로 공수처에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이처럼 감사원의 위상과 신뢰를 실추시킨 책임을 져야 할 수뇌부가 오히려 제 역할을 다한 감사위원을 향해 매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티에프 조사는 절차적으로도 중대한 결함이 있다. 조사 대상에는 최 원장과 유 총장이 포함됐는데도, 외부의 독립된 기구는커녕 유 총장 측근으로 구성된 팀이 조사를 주도했다. 조 위원에 대한 수사 요청에 반대한 감찰담당관을 한직으로 날리는 인사도 저질렀다. 국회에 불려 가서는 티에프의 독립된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온갖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 최 원장의 행태에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감사원은 이회창 원장 시절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국가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여러 정치적 논란이 있긴 했지만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은 지켜왔다. 그러나 지금 감사원은 오로지 대통령실만 바라보는 수뇌부에 의해 ‘정권 보위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역대로 이런 감사원이 또 있었던가. 감사원이 더 이상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최 원장과 유 총장에 대한 공수처 수사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공수처는 감사원을 제자리에 돌려놓겠다는 각오로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