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10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 3.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1월1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6차례 회의 연속 동결한 것이다.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8월 한은이 내놓은 전망치를 웃돌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하면서도 한은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금리 인상이 경기에 미칠 악영향을 더 크게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처지에 놓인 한은이 가계부채 억제에 구실을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금융당국의 구실과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회의 뒤 기자간담회에서 “높아진 국제유가와 환율의 파급 영향,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으로 금년 및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8월 전망치(3.5%, 2.4%)를 상회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자신을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5명이 “긴축 강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고, 그중 1명은 “가계부채가 악화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금통위원들은 기준금리 동결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건 늘 해오던 얘기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물가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지고 있지만, 통화정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정부도 세수 펑크로 지출을 줄이고 있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민생의 어려움을 전혀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로 꼽히는 가계부채마저 다시 늘고 있다. 금융당국 탓이 크다. 39조원에 이르는 특례보금자리론을 풀어 고소득자, 고가주택 신규 매수자에게도 대출을 해줬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선보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상생금융’이란 이름으로 금융회사들의 대출 금리를 내리게 했다. 집값을 떠받치려는 무리한 정책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4월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걱정을 키운다.
최근 금융당국이 뒤늦게 가계부채 관리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8월에 6조1천억원 늘었던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이 9월에는 2조1천억원 증가에 그쳐, 증가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은 5조7천억원이나 늘었다. 아직 앞날을 낙관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대출을 늘려 집값을 떠받치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내려놓고, 이제라도 금융시스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은의 통화긴축 정책에 구멍을 내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