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해경 지휘부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지난 2일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 구조에 실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해경 지휘부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지휘부가 인명피해 가능성을 ‘몰랐다’는 게 이유다. 이 판결로 참사 당일 현장 구조를 위해 출동한 해경 ‘말단’ 간부 외에는 해경 지휘부 가운데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재난에 처한 국민을 구해야 할 국가의 책임은 말로만 존재할 뿐인가. “재난 참사가 발생해도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는 유족들의 절규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해경 지휘부가 당시 현장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해 ‘인명피해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한 1,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업무상과실치사’는 승객들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고 이를 회피할 조처가 있었다는 게 입증돼야 하는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취지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아무런 보고 없이 먼저 탈출한데다, 선박의 불법 증축과 과적으로 예상보다 빨리 침몰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 승객들을 구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해경 지휘부가 당시 상황을 몰랐다고 면죄부를 줄 게 아니라, 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 책임을 물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사법부에 묻고 있다. 국가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를 부여한 헌법 정신에 따라 단 한명의 목숨이라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국가가 아니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앞으로 국가가 어떤 구조계획도 세우지 않아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무겁게 다가온다.
이번 판결은 초기 수사의 잘못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박근혜 정부가 구조 실패 책임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는 바람에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014년 김경일 전 123정장만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김 전 청장 등 해경 지휘부 11명은 문재인 정부 때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이 출범한 뒤 재수사를 거쳐 2020년에서야 기소가 됐다. 그사이 해경 관계자를 비롯한 증인들의 진술이 바뀌는 등 증거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도 ‘윗선’ 수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검찰 수뇌부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기소 여부를 미루고 있다. 이번 판결을 윗선에 대한 면죄부의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