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혁신방안 및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심사소위원회에서 내년 ‘글로벌 연구·개발(R&D)’ 예산을 1조2천억원 삭감하고, 대신 다른 알앤디 예산을 2조원 늘려 전체 알앤디 예산을 8천억원 늘리는 안을 단독 처리했다.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보다 5조2천억원 줄이면서, ‘글로벌 알앤디’ 예산은 5075억원에서 1조8천억원으로 세 곱절 늘린 것을 고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쏟아지는 ‘졸속 편성’ 논란을 외면할 모양이다. 글로벌 알앤디 투자 계획을 27일 그대로 발표하며, 기존 안을 고수할 뜻을 내비쳤다.
연구·개발 예산의 대폭 삭감은 윤석열 대통령이 6월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를 ‘나눠먹기’ 예산으로 지목하면서 급발진했다. 다음날 감사원은 감사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애초 2% 증액안을 만들었다가 윤 대통령에게 호통을 들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날 “알앤디 국제 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연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이에 과기부가 6월29일 각 부처의 알앤디 예산 담당 부서에 나흘 뒤인 7월3일까지 글로벌 알앤디 예산을 늘리는 쪽으로 ‘구조조정 및 재투자’ 안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해, 예산안을 전면 수정했다.
전체 알앤디 예산을 16.6%나 삭감한 것이 연구·개발의 안정적 지속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란 비판이 거센 것과 별개로, ‘글로벌 알앤디’ 예산의 급격한 증액은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알앤디는 해외 연구팀과 협력하는 공동연구나 인력교류 사업이다. 세부 항목을 받아 분석한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1조8천억원 가운데 6400억원이 기존에 있던 사업을 이름만 바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 사업들도 며칠 새 뚝딱 만든 것이 많아 보인다는 게 과학기술계 분석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획해야 하는 해외 협력사업을 우선 예산부터 책정해놓고 사업 계획은 짜맞추는 식이어선 더 심한 예산 낭비가 될 수밖에 없다.
졸속 증액한 글로벌 알앤디 예산을 줄이고, 전체 알앤디 예산을 최대한 복구해야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5대 분야 40대 증액 사업’을 제시하고, 대폭 삭감한 연구·개발 예산도 증액해 보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비판이 거세니, 늘리는 시늉이나 하자는 것이었다면 국민을 두번 속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