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에 내려가 대규모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로 크게 실망한 부산 민심을 달래려고 급조한 정치적 행사다. 직접 사과한 지 일주일 만에 또 부랴부랴 만든 자리에 대기업 총수들을 대거 불렀다. “남부권 거점도시로 육성” 등 사실상 지역 총선 공약을 제시하는 자리에 기업인들을 들러리 세운 것이다. 상식을 벗어난 처사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부산 시민의 꿈과 도전’이라는 이름의 간담회를 열어, “지역 현안은 더 완벽하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엑스포 유치전 참패 뒤 현지 민심 동요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총선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서둘러 대응에 나선 것이다. 기획재정부 등 주요 부처 장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부산 출신 여당 의원 등 참석자 면면에서 행사 취지를 알 수 있다.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항, 한국산업은행 이전 등 부산 표심에 맞춘 지역개발 공약을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앉힌 것이다. 심지어 이 회장은 “부산의 도전에 우리 기업과 삼성도 늘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총수들이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의 지역발전 공약을 뒷받침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전례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간담회가 끝난 뒤 부산의 전통시장 두 군데를 돌며 떡볶이 시식 등 ‘보여주기 이벤트’를 할 때도 이들을 병풍처럼 세웠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유’와 ‘시장경제’가 이런 것인가.
정부는 이들 대기업 총수를 엑스포 유치 홍보전에 대거 동원한 바 있다. 그뿐이 아니다. ‘1개월 1일정’이라고 할 만큼 잦은 대통령 순방 때마다 비서처럼 대동하고 있다. 이번 부산 행사에 참석한 대기업 총수들은 오는 11일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에도 대부분 동행한다. 볼썽사나울뿐더러, 연말 연초를 앞두고 더욱 바쁜 기업들에 ‘관폐’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현대사에서 정치와 대기업의 지나친 유착은 항상 부정부패로 이어졌다.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고 정부와 대기업이 데면데면 지내라는 말이 아니다. 기업의 독립성·자율성은 존중하고, 70~80년대 같은 마구잡이 동원은 자제돼야 한다. 부산 간담회 하루 전날인 5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시장·민간 중심 역동경제”를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