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눴다. 윤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관련 발언 등에 진노해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쏟아진 지 이틀 만이다. 한 위원장 사퇴 거부로 정면충돌 조짐을 보이더니, 갑자기 손을 맞잡은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예정에 없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서천으로 향했다. 현장 보도를 보면, 한 위원장은 90도 ‘폴더’ 인사 뒤 대통령과 웃으며 악수했다. 대통령도 한 위원장 어깨를 툭 치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대통령과 함께 전용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한 위원장은 사퇴 요구에 대해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라며 직접 언급을 피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길게 나눴다”고 말했다. 갈등이 잦아들며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다.
총선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후 ‘사당화’ 논란을 무릅쓰고 이준석, 김기현 대표를 내쳤다. 한 위원장이 세번째 비대위원장이다. 이제 그마저 내쫓게 되면 4월 총선에서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당 안팎에 널리 퍼졌다. ‘찐윤’으로 통하는 이철규 의원이 이날 “대통령의 우려 전달 과정에서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며 “잘 수습되고 봉합될 것”이라고 말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만남이 이뤄진 것을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악수 이후에도 변한 건 없다. 대통령의 사퇴 요구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한 위원장의 김경율 비대위원 ‘사천’ 논란은 여당 내부의 사전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여사의 명품 백 수수와 관련한 한 위원장 발언은 국민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정도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해볼 문제”라는 발언에 진노하는 대통령은 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건가. 법 위반이 명백한 사안에 대해 혼자 성내고 공당 대표 물러나라고 하더니, 이제는 별일 아닌 듯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태세다. 입만 열면 ‘법 앞의 평등’을 외쳐온 한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김 여사 명품 백 수수와 관련해 “몰카 공작이 본질”이라는 궤변 말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직언이든 제안이든 내놓은 게 있나.
한 위원장 사퇴 요구 소동으로 국민의 이목을 엉뚱한 곳에 집중시키고, 다시 전격 봉합하는 듯한 모양새로 이들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 해서는 안 된다. 김 여사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