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지난달 고용노동부로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그럴 만한 규정이 상위 법률에는 없으며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을 근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법률에도 없고 위헌적 소지가 다분한 시행령으로 인해 6만 조합원의 전교조가 법외노조화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려면 법률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원칙을 행정당국이 시행령이나 고시 같은 하위법으로 파기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게 벌어진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3년간 혈세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행정부 입맛에 맞춘 시행령이 발판이 됐다고 한다. 2009년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수정해 보 설치와 준설사업 등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도록 했다. 만일 예비타당성 조사를 벌였다면 4대강 사업은 경제성이 낮아 시작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부터 사업 용역 연구를 맡은 국토연구원 쪽이 경제성 분석 결과를 제시하면 논란이 커질 것 같다며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지 말 것을 정부에 건의했고, 정부는 실제로 시행령을 바꿨다고 한다. 나중에 그 같은 시행령은 국가재정법의 입법 목적에 반하며 위임 범위를 벗어났다는 법원 판결에서 보듯 시행령이 행정편의주의의 시녀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 위의 시행령’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부의 입법권 남용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크고 업계의 이해가 걸린 사안일수록 도드라진다고 하니 더 큰 문제다. 대기업 공장의 화학물질 누출사고 등을 규제하기 위해 중대한 산업재해를 일으킬 경우 매출액의 일정액을 벌금으로 내도록 한 화학물질 관련법이 환경부 등의 시행령에서 벌칙 요건이 크게 완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예외조항 때문에 상당수 기업들이 예외 대상이 돼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해 법을 만들었는데 정작 행정부에서 법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을 만드는 것은 삼권분립에 기반한 민주주의 작동원리를 훼손하는 일이다.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시행령을 명분으로 법률 제정을 막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논란이 국회에서 공론화되지 않고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공정성이 약화되고 사회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법위의 정부가 돼서는 안 되며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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