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나 민경욱 대변인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말을 그토록 스스럼없이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단 나는 살고 보자’는 보신주의, 책임으로부터의 약삭빠른 대피 행위는 세월호 선장 못지않다.
원론적으로 따져 김 실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재난 사태 위기관리를 포함한 포괄적인 안보 기능을 갖고 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이명박 정부 들어 군사적 안보를 제외한 재난 대비 기능을 모두 해당 부처로 내려보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그 기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는지는 온 국민이 눈으로 생생히 보고 있는 그대로다. 정부 부처들의 우왕좌왕, 갈팡질팡은 도무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걸핏하면 ‘우리 부처 소관이 아니다’라는 따위의 복장 터지는 말이나 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니 청와대 관계자들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다’거나 ‘지금부터라도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돼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말을 해야 옳다. 아니면 컨트롤타워 문제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것이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 오열하고 있는 유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청와대는 그런 염치와 예의도 없다.
김장수 실장의 발언은 청와대의 현재 인식과 주된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사태에 섣불리 끼어들어 책임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 싫다는 이야기다. 김 실장의 발 빠른 책임 회피는 단지 본인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책임의 불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한 성격도 지닌다. 박 대통령이 할 일은 ‘고고한 위치’에서 질책하고, 닦달하고, 엄벌에 처하는 일뿐, 책임의 진흙탕에 발끝도 적시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놀라운 충성심이요, 기민한 정치 감각이다.
이 정부 들어 청와대의 전반적인 컨트롤타워 기능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강화됐다는 것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각 부처는 청와대의 통제와 지시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재난 문제만큼은 컨트롤타워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정부를 쥐락펴락하던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은 일제히 모습을 감추었다. 지금 청와대에는 권력은 있어도 책임은 없다. 그리고 권력자는 있어도 리더는 없다. 이 사건의 또 다른 비극이 깃들어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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