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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주검으로 돌아온 ‘141번’ 학생, 할 말이 없다

등록 2014-04-24 19:04수정 2014-04-25 17:25

최덕하군이 ‘141번’ 번호표를 단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기울어지는 세월호에서 제일 먼저 사고 소식을 알렸던 그는 숨졌고, 그의 신고로 달려온 해경 경비정에는 승객을 저버리고 도망쳐나온 선장과 선원들만 올라탔다. 최군과 많은 친구는 끝내 구조되지 못했다.

최군은 의젓하고 침착했다. 그는 16일 오전 8시52분 119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고 신고했다. 2분 뒤 연결된 목포해경은 열일곱살 고등학생에게 경도와 위도, 선명과 선박 종류가 뭔지 따위를 캐물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최군은 침착하게 배 이름을 댔다. 그렇게 6분여를 보낸 뒤 8시58분 해경 경비정이 출동했지만, 현장에 도착한 것은 30여분이 지나서였다. 가까이 있던 해경 진도관제센터는 그 시간까지 사고 소식은커녕 배가 지나가는지, 몇 명이나 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허둥댔다. 배는 30여분 뒤인 10시8분 침몰했다. 아까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단원고 2학년 최군의 친구들도 침착했다. 배가 위태롭게 기우는 순간까지도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선실에서 동요 없이 기다렸다.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만 믿어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신고를 했으니, 해경이 알고 있으니, 밖에 어른들이 많이 있으니, 질서를 지키며 기다리면 곧 구해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던 어른들, 나라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촌각을 다퉈 생명을 구해야 할 시간에 그들은 우왕좌왕 서로 미루고 허둥대다 눈앞에서 300여 목숨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시간에 해경이 선실 안으로 뛰어들어 승객들을 이끌고 대피시켰더라면, 기울어진 선실 창을 깨고 구조밧줄을 내려보냈더라면 하는 한탄은 이제 절망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믿고 기다린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이 못난 나라가 최군과 친구들 앞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단원고는 24일 일주일여 휴교 끝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세월호에 탔다가 숨진 2학년 학생도 여럿 운구차에 실려 마지막 등교를 했다. 하지만 차가운 물속에서 사그라진 목숨들은 아직 다 수습하지 못했다. 25일부턴 당분간 물살이 급해져 주검을 건져내기도 힘들어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식을 품어주고 보내고 싶다는 실종자 부모들의 가슴 찢는 바람조차 채 못 들어주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참담한 상황을 만든 이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해경과 관계 당국의 태만과 무능, 직무유기를 엄하게 추궁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비극은 또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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