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이 28일 소비자보호나 환경, 안전, 공정거래 등의 분야는 애초부터 규제완화를 추진할 계획이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의 이런 얘기를 들으니 무엇보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청와대 민관합동회의를 기점으로 규제완화의 강풍이 몰아치면서 이들 분야의 규제도 무더기로 풀릴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공정거래와 사회적 약자 보호, 환경보호 등을 위한 규제는 강화가 필요할 수 있다”고 한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가 빚어지면서 무분별한 규제완화의 위험을 목도하고 있잖은가. 그런 만큼 정부는 이런 방침을 계속 지켜가야 한다.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300여명의 애먼 희생자를 낸 세월호 사고에는 규제완화가 한몫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에서 20년이던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풀어 30년으로 늘려주는 바람에, 세월호가 지금까지 운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폐기됐어야 할 배가 수많은 여객을 실어날랐다. 눈앞의 이익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대형 사고의 가능성을 간과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선박·해운 쪽의 규제 풀기는 이어지고 있다. 이미 완화됐거나 완화작업이 진행중인 안전규제가 20건가량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 분야도 걱정스럽다. 환경부는 정부 전체 방침에 맞춘다며 올해 규제를 10% 줄이기로 하고 5월까지 세부 이행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규제의 50%를 대상으로 일몰제를 시행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환경은 한번 파괴되거나 손상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수롭게 보아 넘길 수 없다. 공정거래의 경우 아직 규제완화 얘기는 없다. 그럼에도 투자 확대의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더 받으면 어찌될지 모른다.
거듭 밝히지만, 규제완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풀어야 할 것과 풀지 말아야 할 것, 더 조여야 할 것을 제대로 가리지 않은 채 규제완화를 밀어붙이려고 해서 우려하는 것이다. 안전·환경·공정거래 등의 규제는 대체로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규제완화 작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는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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