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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미안해하지 말라”는 말이 더 미안하다

등록 2014-04-30 18:48수정 2014-05-02 15:37

국화꽃 무더기 속 사진으로 남은 친구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함께 공부하고 놀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하나씩 오열이 터져나왔다. 친구들과의 마지막 작별은 그렇게 힘들고 무거웠다.

세월호 침몰 사건 현장에서 구조된 단원고 2학년 학생 70명이 30일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 주검으로 돌아온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학생들에겐 힘든 순간이었을 것이다. 보름 전 그날의 기억은 차마 떠올리기조차 끔찍했을 것이다. 아침볕 따뜻하던 갑판 위와 나른한 선실로 아무렇지 않게 나뉘었던 친구들은 이제 다시는 서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사진으로만 남은 친구들을 보면 나만 살아남았다는 미안함을 이기기도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학생들은 친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 싶다고 스스로 결정했다. 그 힘으로 지금의 어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주변에서도 학생들이 학교와 가정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도와야 할 것이다.

죄책감과 부끄러움, 안타까움은 어른들의 몫이다. 주검으로, 혹은 찬 바닷속의 실종자로 남은 학생들은 기다리라는 방송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랐다. 어른들은 그 믿음을 저버렸다. 부끄럽게도 선장과 선원들은 선실 밖으로 나오라는 말도 않고 자기들만 일찌감치 도망쳤다. 구조하러 왔다는 해경은 배 안에 남은 승객들을 구조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기울어진 배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정부 당국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선장이나 선주를 악마로 몰아세우기 바쁘다.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지도, 유족 앞에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지도 않는다.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것은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아니라 인간성과 책임 따위는 나 몰라라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이 참혹한 세상이고, 그 세상을 방치한 우리 어른들이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로 매일 울고 안타까워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 의연한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유가족들은 대신 “제 자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무능한 저희”를 탓하며 자책했다. 유족들이 자책할 일이 결코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보호하고, 다중이용시설의 안전을 보장하고, 사고를 당한 국민을 구조하는 일은 그 부모나 가족이 아니라 국가가 할 일이다. 가족이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 한다면 이미 그것은 야만의 정글이지 국가가 아니다. 마땅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고, 그 책임을 낱낱이 따져 잘못을 바로잡는 게 이제 남은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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