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25일 ‘6월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는 유병언씨가 틀림없지만,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내용의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국과수의 언론 브리핑은 매우 이례적이다. 수사기관 대신 국과수가 직접 설명에 나선 것부터가 없던 일이거니와, 주검 사진과 각종 분석자료를 거의 다 공개하는 등 발표 내용도 더없이 자세했다. 유씨 주검을 둘러싼 온갖 불신과 의혹을 잠재우려는 다급한 시도로 보인다. 경찰청도 의혹을 일일이 해명하는 자료를 내놓았다.
확인된 사실들을 살펴보고 설명을 들어보면 발표 내용을 부인할 만한 구석은 별반 없어 보인다. 변사체가 유씨가 아니라든가, 시신이 바꿔치기 됐다든가 하는 소문들이 오히려 하나하나 따져보면 구체적인 사실에서 더 많이 어긋난 듯하다. 그런데도 불신은 여전하다. 국과수 발표조차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공공연하다. 새로운 의혹이 거듭 제기되는 등 논란도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의혹의 상당수는 지금 수사 단계에선 명확하게 규명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미심쩍은 부분이 남을 수밖에 없는 탓에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 불신에 기대어, 누군가 이런 일을 짜맞췄으리라는 음모론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자명하다.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공식 해명이나 발표를 믿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정부가 저지른 ‘믿지 못할 일’을 무수히 목격했다. 불과 얼마 전에도 국가정보원이 여론을 조작해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들었고, 간첩을 만들려고 증거까지 조작했다. 검찰과 경찰에서 진실이 바뀐 채 발표됐다가 나중에 드러난 일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 역사에서 정부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존재’였다. 이번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떠들썩하게 벌어진 유병언 추격전의 ‘분위기 몰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가리려는 여론 호도 아니냐는 풀이가 진작부터 파다했다. 일부러 안 잡는 게 아니냐는 루머도 그런 의심에서 싹텄다. 유씨 시신에 대한 의혹들도 유씨에게 책임을 몰려 했던 ‘속 보이는 행태’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불신은 결국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국민의 불신 위에 정부가 온전히 유지되긴 어렵다. 정부는 이제라도 ‘유병언 몰이’ 대신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가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특별법 제정은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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