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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슬픈 추석

등록 2014-09-04 20:46

자식 잃은 부모들의 가슴에도 휘영청 달은 떠오른다. 이제 아들딸들을 위해 정성스레 차례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금방이라도 웃음 내미는 한가위 달처럼, 저 골목길을 달려와 가슴에 안길 것만 같은 아들딸들은, 이제 영원히 오지 않는다. 온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송편 빚던 그날들, 사랑이 탐스럽게 익어가던 즐거운 명절의 기억도 이제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한다. 손 내밀어 닿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품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자식 잃은 부모들의 가슴속에 달이 진다.

2014년 대한민국의 추석은 명절이 아니다. 추석은 풍요한 수확을 기뻐하는 날이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 속에 흘린 땀과 노력과 성취를 자축하는 자리다. 지난여름 이후 우리의 시간은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뒤엉켜 있던 시간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짐했다. 죽음을 삶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겠노라고. 그래서 나라를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만들겠노라고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텅 빈 황량한 들판이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더욱 가슴 시리게 하는 오늘이다.

보름달처럼 넉넉한 추석 특유의 덕담도, 힘든 이들을 향한 따뜻한 손 내밈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차마 인간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가시 돋친 말들이 난무할 뿐이다. 이 말들은 비수가 되어 자식 잃은 불쌍한 이들의 상처를 후벼파고 가슴의 살점을 도려낸다. 이런 비정함의 맨 선두에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있다. 대통령은 추석에 즈음해 인사치레로라도 한번쯤 유족들을 향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법도 한데 일절 입을 다물었다. 그 차가움과 매정함에 서릿발이 돋는다. 집권여당 대표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세월호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추석을 앞두고 유족들에게 줄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선물이었다. 꽃망울 같은 자식들이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라도 부여안아야 자식들의 첫 차례상을 차리는 이 슬픈 명절을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한 가닥 기대마저 점차 사라져간다. 청와대에 대한 조사 가능성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잠그겠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고집은 완강하기만 하다.

팽목항 바다 위에는 아직 아들딸의 주검조차 찾지 못한 부모들의 통곡이 흐르고, 광화문 길바닥에는 삼보일배를 하다 경찰에 막힌 유족들의 한숨과 눈물이 흐른다. 슬픈 추석, 달님도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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