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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악취 풍기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등록 2014-11-28 18:28수정 2014-12-02 15:45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올해 초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감찰을 벌였으며, 정씨와 청와대 실세인 ‘비서 3인방’이 자주 회동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던 사실이 28일 확인됐다. 청와대는 보고서 내용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지만 보고서의 존재에 대해선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서 비선에 의한 국정 농단과 물밑 암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언론에 공개된 청와대 보고서 내용을 읽어보면, 21세기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흡사 중세 왕조의 비밀스런 궁중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다. 고 최태민 목사 사위였던 정윤회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에 비서실장을 지냈고 최근까지도 ‘숨은 실세’란 소문이 끊이지 않던 인물이다. 그런 정윤회씨가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비서 3인방’으로부터 청와대 내부 동향과 정국 동향을 보고받고,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을 퍼뜨리라고 지시하는 등 막후에서 국정운영과 인사에 개입했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실제로 그런 모임이 존재하고 그 모임을 통해 정윤회씨가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는지는 앞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이런 의혹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권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고 최근엔 정윤회씨가 다닌다는 역술인 집이 문전성시라는 소문도 정치권에 파다하게 돌았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란 한마디로 의혹 제기를 무시하거나 ‘법적 대응’으로 위협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감찰 보고서를 올린 공직기강비서관실 비서관과 행정관이 공교롭게도 그 직후에 청와대 밖으로 인사조처된 걸로 보면, 그 진상을 밝히는 작업을 청와대에 맡길 수는 없다. 필요하면 국회 차원에서 조사를 하거나 검찰 수사를 해서라도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청와대가 궁중 암투의 본산처럼 비치게 된 책임은 궁극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이 주요 정책을 어떤 회의를 통해 어떻게 결정하고, 누구를 만나 대화하고, 현안은 누구와 상의하는지 등등이 이 정권에선 모두 베일에 가려 있다. 전직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가운데엔 “재임 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면 보고를 하거나 전화로 현안을 상의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이 매일 청와대 집무실에 나오기는 하는 건지, 참모들과 수시로 회의를 하기는 하는 건지조차 알 수가 없다. 권력이란 게 아무리 비밀스런 속성을 지녔다고 해도, 지금의 청와대는 그 도가 너무 지나치다. 정윤회씨를 둘러싼 의혹과 감찰조사 파문은 박 대통령의 극단적인 신비주의가 불러온 필연적 결과물이다.

과거 모든 정권이 측근 비리나 비선 논란 등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사안은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폐쇄적인 권력일수록 쉽게 썩고, 썩어도 그 냄새가 밖으로 쉽게 퍼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비선에 의존하고 모든 걸 비밀로 감추는 박 대통령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정윤회 감찰 파문’과 같은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이다. 박 대통령은 ‘누가 이런 보고서를 외부에 유출했나’를 추궁하기보다 스스로의 국정운영 방식을 되돌아보고, 철저히 바꿔야 한다. 투명함과 공식성을 대통령 활동의 제1원칙으로 삼아야 사태의 악화를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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