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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청와대가 ‘찌라시 공장’이란 말인가

등록 2014-11-30 18:47수정 2014-12-02 15:40

‘정윤회씨 국정농단 감찰 보고서’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본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정씨와 비선라인의 국정개입 의혹을 규명하는 일보다는 엉뚱하게 문건 유출 경위를 조사하는 쪽으로 사건의 물꼬를 돌리려 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를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서둘러 규정한 것이나, 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 단적인 증거다.

우선 청와대가 문제의 보고서를 스스로 ‘찌라시’라고 규정한 대목은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 한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공직 인사 관리와 공직자들에 대한 감찰 활동을 하는 곳으로, 청와대 안에서도 가장 핵심 비서관실 중의 하나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찌라시 제조 공장’이라는 말을 청와대는 아무런 창피함도 느끼지 않고 스스럼없이 한다. 찌라시 생산에 대해 어떤 제재 조처를 취한 적이 있다는 말도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비선조직의 국정농단 의혹 못지않게 찌라시 발언 자체만으로도 청와대는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더욱 문제는 청와대가 이 보고서를 ‘찌라시’라고 규정한 근거도 모호하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보고서 내용의 진위를 면밀히 확인하지도 않고 단지 김기춘 비서실장이 당사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아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그냥 덮었다고 한다. 과연 당사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도대체 이런 사안에서 당사자들이 ‘네, 맞습니다’라고 선선히 시인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이런 중요한 문건에 대한 후속조처가 흐지부지된 것은 그만큼 ‘문고리 권력’과 ‘비선 실세’들의 힘이 막강함을 보여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이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를 다짜고짜 고소부터 하고 보는 청와대의 행태는 참으로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이 보고서가 청와대에서 만든 문건이 아니라면 또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만든 문건을 보도했다고 해당 언론사를 고발한 권력기관은 세상에 처음 본다. 검찰 수사를 동원해 해당 언론사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까지 위축시켜 후속 보도를 막겠다는 청와대의 일그러진 언론관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지금의 흐름을 종합해보면 ‘검찰 수사로 밝혀질 진실’은 국정농단 의혹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이 의욕적으로 전 수사력을 동원해 정윤회씨와 비선 실세들의 국정개입 전모를 밝히겠다고 덤벼들 것인가. 어림도 없어 보인다. 고작해야 이들의 해명을 듣는 데 머물 공산이 크다. 그리고 보고서를 만든 행정관 등을 불러 조사한 뒤 ‘뚜렷한 근거 없이 시중에 흘러다니는 소문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게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정윤회씨 파문이 덮어지고, 더 이상은 비선이니 문고리 권력이니 하는 말이 사라질 것인가. 그것 또한 어림없는 일이다. 청와대는 꼼수로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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