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씨 국정개입 감찰 보고서’ 파동과 관련해 한 발언의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은 결코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문서 유출 행위를 철저히 조사해 일벌백계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국기문란’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는 했으나 이는 단지 문서 유출만을 지칭한 것이었다. 문서 유출보다 더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인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 의혹은 철저히 외면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의 결론은 이미 나와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검찰의 생리상 대통령이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했는데 그 선 밖으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문건 유출자를 색출해 처벌하고, 비선 실세들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온전히 규명되길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 됐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왜 이 정권에서 비선 실세니 문고리 권력이니 하는 말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사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제대로 했으면 비선 따위의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권력 내부의 암투가 빨리 불거져 나왔고, 이번 문건 파동 자체도 치열한 내부 권력투쟁의 연장선이라는 것이 지배적 관측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을뿐더러 현실을 직시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국가 최고지도자라면 모름지기 측근들의 전횡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냉철하게 ‘권력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잡음을 일으키는 측근 인사들을 냉정히 내치는 단호함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을 무조건 감싸고 변호하는 데만 급급하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문건에 등장한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업무를 중지시키는 것이 상식적인데도 그런 의식 자체가 없다. 이러니 비선들의 국정개입 의혹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언론관은 심각하게 위험한 수준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보도했다”고 <세계일보>를 질타했다. 그러나 ‘비선들의 국정농단’은 사안의 성격상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검찰은 본인들에게 확인해보고 ‘아니다’라고 하면 그냥 그렇게 믿어버릴지 모르겠지만, 언론은 결코 그렇지 않다. 청와대가 자체 생산한 문건을 스스로 ‘찌라시’라고 규정하는 나라가 ‘비정상적’이지, 청와대 보고서를 보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언론의 사명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나라를 만든 자신을 탓하기는커녕 오히려 언론에 화를 내는 박 대통령은 얼마나 염치없는 대통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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