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7일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비선 실세’와 측근 비서들의 ‘국정 농단’ 논란에 대해 한 말은 실망스러울뿐더러 크게 걱정된다. 드러난 사실과 의혹조차 외면한 채 ‘자기 생각’에 빠져 우기기만 하는 듯한 대통령에게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책임지는 자세도 찾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비서실장이던 정윤회씨와 이른바 ‘3인방’이라는 측근 비서들의 인사 전횡 및 국정 개입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국정 개입 의혹의 첫 보도 직후 청와대가 ‘찌라시’라고 폄하했던 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모습이다. 국정개입 논란의 검찰 수사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쏟아져나온 폭로와 의혹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 듯하다. 드러난 사실 가운데는 대통령이 도저히 부인하기 힘든 일도 있다. 정윤회씨 부부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승마협회 감사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문체부 국·과장 경질까지 장관에게 직접 지시했다는 당사자의 생생한 증언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 “나쁜 사람이라더라”라고 말했다니, 그렇게 하도록 한 사람이 애초 누구였는지 따지고 밝혀야 하는데도 청와대는 사리에 안 맞게 변죽을 울리는 변명만 하다 입을 닫았다.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조차 ‘찌라시’라며 외면한 꼴이다.
이것 말고도 비서 3인방 등이 정부 부처나 군·국정원·공기업 등을 가리지 않고 온갖 크고 작은 인사에 무리하게 개입해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다는 여러 보도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일축한 모양새가 됐다. 그런 전횡 탓에 국정이 뒤틀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소모적 의혹 제기”라고 아예 문제의 존재조차 부인한다면 국정 정상화는 기대할 수 없다.
비선 개입 논란이 이토록 커진 것은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매우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이나 정부 안에서도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말이 파다했던 터다. 웬만한 인사는 인사권자인 장관이나 기관장이 아니라 청와대와 비선이 행사한다는 말도 ‘다 아는 비밀’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곪아가던 중에 정권 내부의 암투와 분열에 못 이겨 의혹이 물 위로 불거진 것이다. ‘국정 흔들기’나 ‘발목 잡기’라고 남 탓 할 일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 바로 옆에서 국정 농단과 전횡이 번연히 벌어지는데도 사실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3인방 등 문제의 근원을 잘라내고 주변을 쇄신해 체제를 정상화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대통령의 심기만 맞추려 들 게 아니라 대통령이 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야 한다. 국정 붕괴의 피해는 온 국민이 입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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