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 유출의 배후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목하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실시한 특별감찰 결과 지난 4~5월께 청와대에 보고된 유출 문건 100여장의 사진 출처가 조 전 비서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심지어 청와대는 조 전 비서관이 문건 유출 사실을 청와대에 알린 것도 유출 경로에 혼선을 주기 위한 ‘자작극’으로 보고 있음을 내비쳤다.
청와대의 이런 발표는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우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청와대가 사건 내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부터 온당치 못하다. 정확히 말하면 청와대는 이번 사건에서 수사의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문건 유출 사실을 알고서도 그냥 덮고 넘어간 이유를 비롯해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서 여러 가지를 해명해야 할 처지다. 그런 청와대가 뒷북 감찰을 벌인 것으로도 모자라 대변인까지 직접 나서서 수사에 영향을 끼칠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나선 것은 납득하기 힘든 행동이다.
청와대의 이런 발표는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청와대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문제의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했고, 실제 검찰 수사는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문건을 허위로 결론내려가는 시점에 때맞춰 청와대는 또다시 문건의 유출 책임자를 지목하고 나섰다. 누가 봐도 ‘2차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되는 부적절한 행동이다.
청와대의 감찰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오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을 상대로 유출된 사진 출처가 조 전 비서관이라는 내용의 진술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한다. 오 전 행정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7시간 반 동안의 조사에서 ‘문건 작성과 유출은 모두 조 전 비서관이 주도한 것 아니냐’는 질문만 계속했고 이런 내용의 진술서에 확인 서명을 강요했지만 끝까지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런 청와대의 움직임을 보면 이번 사건의 최종 처리 방침이 어떻게 굳어졌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를 조 전 비서관 등이 주도한 허위 문건으로 결론짓고, 문건 작성·유출의 모든 책임을 조 전 비서관에게 미루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특히 전직 청와대 핵심 비서관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은 조 전 비서관을 어떻게든 손보고 넘어가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느껴진다.
문건의 유출 책임자가 과연 조 전 비서관인지는 구체적 증거 등 앞으로의 검찰 수사 결과를 면밀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청와대는 이미 스스로를 진흙탕 싸움의 당사자로 밀어넣고 말았다. 청와대가 전직 비서관과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공개적으로 치고받는 싸움을 하는 것부터가 창피한 노릇이다. 청와대만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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