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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명분 없는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

등록 2015-06-01 18:49수정 2015-06-25 15:41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정부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 요구권을 명시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강하게 시사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 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국정은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다. 그렇기에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회법 개정안이 지금 상태로 정부로 이송된다면 국회로 되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거부권 행사는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국회와 정부 의견이 대립할 때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이 바로 거부권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거부한 법률안을 국회가 재의결하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되고, 재의 과정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는 심각하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회가 국민 다수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판단될 때만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는 매우 부적절하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으로 ‘국정은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해질 것이며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가. 이번에 개정된 국회법 조항은 단 하나, 정부 시행령이 법률과 배치될 경우 과거엔 ‘국회가 그 내용을 정부기관에 통보하도록’ 했던 것을 ‘국회가 내용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법과 어긋나는 시행령은 고치는 게 마땅하다. 국민 위임을 받아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 뜻과 다르게 행정부가 법을 집행한다면, 행정부의 그런 행동을 바로잡는 게 순리다. 만약 국회가 국민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법을 만들었다면, 그건 시행령으로 바로잡을 일이 아니라 법 자체를 개정하는 게 옳다.

지금 박 대통령은 행정부의 불편을 국정 마비와 국민의 막대한 피해로 호도하고 있다. 오히려 국회법 개정안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진짜 이유는, 청와대 뜻을 따르지 않고 야당과 협상한 여당의 원내 지도부를 이참에 바꾸자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치적 의도로 거부권 운운하며 국회를 압박하는 게 청와대가 주장하는 ‘삼권분립’ 정신에 맞는 것인지, 다시 한번 숙고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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