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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후진적 재벌체제의 폐해 보여준 ‘롯데 사태’

등록 2015-07-29 18:28수정 2015-08-02 14:36

롯데그룹이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창업주 2세 간 다툼에 휩싸였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28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총괄회장)을 퇴진시키고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롯데홀딩스는 한·일 두 나라 롯데그룹의 정점에 서 있는 핵심 고리다. 바로 전날인 27일엔 신 총괄회장이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그룹 전 부회장 등과 함께 전세기편으로 일본에 날아가 롯데홀딩스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신 총괄회장은 자신을 뺀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모두 해임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6명 가운데는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포함됐다. 하루 사이에 대반전극이 펼쳐진 것이다. 이로써 한·일을 아우르는 전체 롯데그룹 후계 구도는 일단 차남인 신동빈 회장 쪽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몸이 불편한 93살 아버지(창업주)를 앞세운 장남의 거사가 하루 만에 아버지 퇴진이라는 초강수로 되치기한 차남에 의해 진압된 꼴이다.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재벌가 집안 혈투 이야기가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졌다니 놀라울뿐더러 착잡하기도 하다. 이번 사태가 국내 재벌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의 초라한 민낯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어서다. 엄연히 주식회사 형태를 띤 법인의 경영권이 단지 ‘아버지의 뜻’이나 ‘가족 간 합의’ 등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고 믿는 현실은 극히 비정상적이다. 옛 현대그룹이나 두산·효성 등 총수 일가의 내분 사례가 여지없이 되풀이된 것이다. ‘형제의 난’, ‘왕자의 난’이란 표현이 거듭 등장하는 세태야말로 21세기 최첨단 시대의 봉건 잔재라 아니할 수 없다.

롯데그룹 지배권 분쟁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동주·신동빈 두 형제의 피 말리는 힘겨루기뿐 아니라, 둘을 포함한 창업주 일가 내부의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국내만 놓고 보더라도 롯데그룹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매출 80조원에 10만명 가까운 종업원을 둔 재계 순위 5위급 재벌이다. 이만한 덩치의 대기업의 운명이 한낱 총수 일가의 ‘내전’에 휘둘려야 하는 눈앞의 현실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1922년생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이병철(1910년생), 정주영(1915년생) 회장 등과 함께 국내 1세대 기업인이다.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통해 합리적인 승계 문화와 규범을 가다듬어온 선진국과 달리, 산업화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우리의 경우엔 경영권 승계 과정마다 편법과 불법, 무리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승계 과정이 산업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라는 외부 환경과 맞물리다 보니 혼란상은 더욱 심하다. 경쟁력을 키우는 데 온전히 쏟아도 모자랄 기업 역량을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다툼이나 승계 ‘묘수’를 짜내는 데 소모하는 국내 재벌의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지 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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