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내분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사이 재계 5위의 롯데 총수 가문이 보여준 모습은 막장 드라마의 대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아들인 동주·동빈 형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상호 비방을 이어가고 있다. 형이 총괄회장의 뜻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의 문건과 육성녹음, 동영상을 잇달아 공개하자, 동생은 “해임 지시는 법적 효력이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단지 총수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친족들이 계열사 경영진을 호출해 ‘줄을 잘 서라’고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주주와 종업원, 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맞물린 기업 경영을 ‘집안일’ 정도로 인식하는 재벌 가문의 봉건적 행태를 잘 보여준다. 오죽하면 여당 중진 의원 입에서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재벌그룹이 이전투구를 하고 있어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미 조롱거리로 전락한 롯데가의 이전투구가 이른 시일에 끝날 것 같지도 않다. 총수 일가의 각성이나 이성적 판단을 기대하기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예전 같으면 재계 원로들이 ‘중재’ 흉내라도 낼 법한 일이지만, 1세대의 퇴진과 관련된 문제여서인지 이미 2세, 3세가 주력인 재계가 어찌할 방도도 없는 듯하다.
롯데 사태는 쥐꼬리만한 지분을 손에 쥔 총수 일가가 법과 제도를 깡그리 무시한 채 그룹의 운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재벌가 족벌경영의 폐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결코 롯데그룹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경제정책 운용 기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재벌개혁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린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재벌의 퇴행적 행태를 더 방치했다가는 재벌이 국민경제의 성장동력이기는커녕 오히려 나라 경제를 위협하는 리스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고작 0.05%의 지분을 쥔 ‘아버지의 뜻’에, 수십만명의 임직원과 그 가족의 운명은 물론이려니와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와 자본시장에 대한 평판 전체가 휘둘리도록 내버려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민주화 공약은 큰 기대를 모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집권 뒤 보여준 모습은 정반대다. 투자를 유치한다면서 재벌 의존도를 더욱 높였고, 최근 들어선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아래 죄지은 기업인들의 사면에도 적극적이다. 반면, 구조개혁의 칼날은 주로 노동시장 ‘개혁’에만 향하고 있다. 이해당사자들의 타협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쉬운 해고’에만 방점을 찍고 밀어붙이기에 몰두하는 게 정부의 현재 모습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깨 성공적인 노동개혁을 이뤄내기 위해서라도 재벌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할 때다. 그래야 한국 경제의 미래도 열린다. 볼썽사나운 롯데 사태가 던지는 값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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