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총수 가족들 사이의 다툼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당사자들 간의 낯뜨거운 공방이 주춤해지면서 경영권 확보에 한발 더 다가선 듯한 신동빈 회장이 11일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가운데 금세라도 재벌개혁을 위해 이런저런 조처를 취할 것 같던 새누리당과 정부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새누리당은 롯데사태로 부각된, 기존 순환출자에 따른 문제점을 점검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없던 일’로 만들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던 태도도 바뀌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그룹 해외계열사에 대한 공시 의무화 정도만 검토할 듯하다. 재벌개혁의 중요한 계기가 사라질지 모르게 생겼다. 이래서는 안 된다.
롯데사태는 재벌그룹들의 소유·지배구조가 전근대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자산 순위 5위 그룹의 속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다른 재벌그룹들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폐해를 안고 있다. 총수 일가가 소수의 지분으로 수십개 계열사 운명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온 것은 그래서다. 롯데사태도 재벌그룹들의 일그러진 행태를 바로잡는 기회로 선용해야 한다.
우선 상법 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고 집단소송제를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면서 총수나 그 대리인들의 전횡을 줄일 수 있는 도구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대부분 시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이를 공약했고, 취임 뒤인 2013년 4월에는 이를 반영해 법무부에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차례 공청회를 연 뒤로는 개정 작업이 중단되고 말았다. 재벌그룹들이 반발하자 슬그머니 거둬들인 것이다. 그런 만큼 상법 개정 작업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기존 순환출자 규제도 이참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는 재벌그룹 소유구조의 취약점을 해소하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당장 시행하기가 부담스럽다면 도입 원칙을 정한 뒤 얼마간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의 제대로 된 주주권 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10일 국민연금의 요구를 받아들여 현행 수준의 권한을 행사하되, 투자수익률을 보호할 장치를 강구하도록 하는 선에 그친 것은 그런 면에서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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