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현재 사용되는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좌편향돼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억지 주장이다. 설사 그런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부·여당과 역사관을 공유하는 세력의 무능을 자인하는 꼴이니 우습기만 하다.
현행 검정제도 아래서는 어느 출판사나 교과서 편찬을 신청할 수 있다. 역사 교과서의 경우 3년간 역사 관련 도서 1종 이상을 출판한 실적만 있으면 된다. 집필진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행 교과서들이 좌편향 일색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은 왜 직접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그런 교과서를 만들어 시장경쟁 원칙에 따라 다른 교과서보다 우위를 점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국정화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주장은 스스로 좋은 교과서를 만들 능력이 없음을 실토하는 꼴이며, 자유로운 경쟁 원리가 아니라 강제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역사관을 교과서에 주입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이다.
국정화 지지세력의 학문적 무능과 한계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뉴라이트 계열이 총력을 기울여 만든 이 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라는 극우적 역사관으로 비난받았을 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실관계 오류로 ‘불량 교과서’임이 확인됐다. 근현대사뿐 아니라 고대사 부분에서도 50쪽 분량에서 70여개의 오류가 발견될 정도였다. 심지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혼동한 사례도 있다. 이 교과서의 채택률이 0%대에 그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근거가 빈약하고 오히려 역사적 사실의 은폐·왜곡을 통해서만 뒷받침되기 때문에 교과서 시장에 진입하기가 힘든 것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정부·여당이 교과서 집필진의 성향을 두고 색깔론 몰이를 하는 건 본질을 가리는 비겁한 태도다. 교과서 집필진의 자격은 역사 학자·교사로서의 실력과 자질로 따져야 한다. 질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출판사들로선 당연히 이런 기준으로 우수한 집필진을 골랐을 것이다. 집필진에 특정 단체 소속 교사가 많다면 그 단체에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많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검정 교과서는 정부가 마련한 집필기준, 편수용어, 검정기준 등 다양한 편찬 준거에 따라 서술된다. 사후적인 수정명령도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도 집필진이 교과서 내용을 좌우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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