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새누리당이 전국에 내건 펼침막의 글귀다. 북한 주체사상을 찬양하거나 그대로 주입하는 내용이 현행 역사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게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부터 즉각 해명하고 사죄할 일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해임감이다. 현행 역사교과서는 2013년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검정을 통과하고 이어 대대적인 수정·보완까지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주체사상을 옹호하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니 이 정권이 주체사상 추종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새누리당 주장은 물론 사실과 다르다. 현행 교과서들은 주체사상이 개인숭배와 반대파 숙청, 주민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된 사실 등을 지적하면서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두 문장의 소략한 서술에 그치는 교과서도 있다. 오히려 뉴라이트 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는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주체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 통일부 의뢰를 받아 중학교 교과서 내용을 분석한 보고서에서도 ‘북한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다룬 내용이 많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도 버젓이 저런 펼침막을 내거는 것은 의도적으로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다. 국정화 논리가 하도 궁색하다 보니 허위사실 유포를 통해서라도 여론을 얻어보겠다는 심산일지 모르나, 그게 박근혜 정권의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라는 점은 간과한 모양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현행 교과서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게재하고 있다”고 답변한 걸 보면 정부·여당 모두 이성을 잃은 것 같다.
새누리당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주체사상을 교과서에서 아예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더라도 자가당착이긴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지난달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한국사 과목의 학습 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체제, 천리마운동, 7·4 남북공동성명” 등이 명시돼 있다. 주체사상을 교과서에 넣으라고 지시하는 건 다름 아닌 현 정권이다.
새누리당 펼침막 홍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정권이 사리에 맞지 않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조작해 이념공세를 펴는 대중조작의 전형적인 사례다. 국정화 추진 세력이 벌써부터 이렇게 뻔뻔하게 사실을 호도하는 걸 보면, 이들이 만들 교과서가 얼마나 역사를 왜곡할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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