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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방패막이’ 대표 집필자로 밀어붙이는 ‘한국사 국정화’

등록 2015-11-05 18:37

한국사 국정교과서 대표 집필자로 선정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4일 오후 자신의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서 했다는 발언 내용은 국정교과서 편찬 작업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준다. 최 교수는 자신이 국사편찬위원회 기자회견에 불참하자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참석을 종용했다고 <시비에스>(CBS) 기자에게 밝혔다. 그는 현 수석에게 “제자들과 술을 많이 마셔 참석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현 수석은 “술을 마셨어도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등 구체적인 대화 내용까지 전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작업이 전적으로 교육부의 결정 사항이라는 청와대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집착을 잘 아는 청와대 참모들이 두 손 놓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솔직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계속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식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 그러다가 최 교수의 발언을 통해 청와대가 물밑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사실이 꼬리를 밟힌 셈이다.

최 교수의 발언이 나온 뒤에도 청와대는 여전히 오리발 내밀기로 일관하고 있다. 현 수석 쪽은 “전화를 건 사실이 없다. 최 교수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가 굳이 없는 말을 지어낼 이유도 없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발언 내용도 너무나 구체적인데 청와대는 무조건 잡아떼고 보자는 식이다. 오늘 당장 일어난 일도 이렇게 사실관계를 뒤집는 판에 과거에 일어난 역사를 어떻게 제대로 쓰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최 교수가 자신을 “방패막이”라고 자조하면서 “말이 대표지, 진짜는 근현대사를 다루는 사람들이 대표 집필진”이라고 말한 대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이미 은퇴한 70대 원로교수들을 헐레벌떡 끌어들이는 속사정이 무엇인지를 최 교수 자신의 입을 통해 확실히 설명해준 것이다. 대표 집필자 스스로 자신을 들러리와 방패막이로 여기는 상황에서 앞으로 만들어질 교과서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최 교수의 처신도 참으로 딱하다. 자신의 ‘실제 용도’가 무엇인지를 그렇게 잘 안다면 차라리 대표 집필자 자리를 뿌리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국정교과서 집필 참여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허울뿐인 대표 집필자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학자의 마지막 길을 불명예로 장식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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