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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대통령은 ‘국민과 민생’을 말할 자격이 있나

등록 2015-11-06 19:09

박근혜 대통령이 6일 국회를 향해 “부디 ‘국민과 민생을 위한다’는 말이 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 규제개혁과 관련한 많은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데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앞이 보이질 않는다. (국회는) 정치논쟁과 당리당략을 떠나 오직 국민과 민생만 생각하는 마음으로 법안을 처리해달라”고 말했다. 참으로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국정교과서 문제로 나라 전체를 분열의 마당으로 밀어넣은 게 누군데, 되레 야당에 ‘민생 챙기라’고 질타하는 적반하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회가 법안 처리와 예산 심의를 중단해버린 건 안타까운 일이다. 새누리당 표현을 빌리면, 지금은 노동개혁·연금개혁 등을 추진하고 실물경제의 불을 지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런 시점에 여권 안에서도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국정교과서 문제를 끄집어내 나라를 혼돈에 빠뜨린 건 바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진정 국민을 생각하고 민생을 걱정한다면, 경제와 개혁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국정교과서와 같은 논쟁적이고 분열성이 큰 문제를 끄집어내선 안 됐을 것이다. 설령 이게 필요하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모으기 위한 토론과 논의 과정을 거쳤어야지 이렇듯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일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아니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6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는 대통령과 생각을 달리한다. 대통령 지지율은 10주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국정화 반대 응답은 지난주보다 4%나 올라 과반을 넘어섰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오직 개인적 신념만으로 추진하는 건 교조적 원리주의자나 할 일이지 민주 국가의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다.

박 대통령 발언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원유철 원내대표 발언을 통해서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원 대표는 야당에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면서 “이런 경제상황에서 국민이 먹고사는 민생과 상관없는 문제로 국회를 마비시키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야당이 아니라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로 읽어야 더욱 적절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탓할 게 아니라 국민과 동떨어진 자신의 이념 과잉과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나라의 자원을 헛되이 탕진시키고 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교과서 말고도 처리해야 할 중대사가 너무 많은 걸 모르는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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