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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국민을 우롱하는 ‘깜깜이 교과서’ 집필 방침

등록 2015-11-09 18:49수정 2015-11-10 15:42

한국사 국정 교과서 집필진 공모가 9일 마무리됐지만 과연 얼마나 역량 있는 학자·교사가 몇 명이나 지원했는지 정부는 밝히지 않았다. 최종 선정될 집필진에 대해서도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다툼이 커지면 집필자, 특히 학문만 하시던 분들은 평온한 가운데 소신껏 하시기가 힘들다”고 비공개 이유를 댔다.

하지만 집필진 비공개는 정부가 검정 교과서 체제를 뒤엎고 국정 교과서로 전환한 핵심 논리와 모순된다. 정부는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다양성을 갖추지 못해 교과서 내용이 편향됐다’는 점을 국정화 추진의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엄연히 정부가 만든 편찬 기준에 따라 쓰인 교과서들인데도 집필진의 성향이 문제라는 억지 논리를 들이댄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정부는 국정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성향의 실력 있는 집필진을 구성해야 하고 이를 국민에게 확인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편향된 역사관을 지녔는지, 자질과 능력이 충분한지 도무지 검증할 도리가 없어진다. 결국 정부 스스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셈이다.

상고사 책임 집필자로 선정됐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부적절한 언행과 사퇴는 집필자 공개가 왜 필요한지 분명히 증명해줬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의 후임자를 비롯해 시대별 책임 집필자마저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국정 교과서의 방향에 대한 최소한의 예견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한마디로 어떤 국정 교과서가 나올지 그저 눈감고 기다리라는 식이니 국민 무시의 극치다. 21세기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만도 세계적 놀림감인데 이런 ‘깜깜이 교과서’는 또 하나의 해외토픽감이 아닐 수 없다. 막판에 엉뚱한 교과서를 내놓고 그대로 밀어붙이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집필진 보호를 비공개의 근거로 삼는 것도 궁색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어떤 보호가 필요하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집필자가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한다면 그는 학자적 소신과 전문성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물리적 폭력이나 협박의 위험성까지 제기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질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경찰이 엄정한 대응 방침도 밝힌 상태다. 이를 집필진 비공개의 근거로 삼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정부는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접고 당장 집필진 공개 방침으로 돌아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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