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국민 의견을 듣기 위해 20일간 행정예고를 했다. 의견 접수 시한은 2일 밤 12시였다. 그런데 그날 밤 11시께 국정화 찬성 의견·서명지가 든 상자 50여개가 교육부에 트럭으로 배달됐다. 야당이 교육부에 보관 중인 상자를 조사한 결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양식에 내용도 비슷한 의견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한다. 또 같은 필체로 수십명의 이름·주소가 적힌 서명지, 컴퓨터로 출력한 서명지, 복사해서 중복 제출한 서명지 등도 나왔다고 한다. 서명을 주도한 단체도 정체불명이다. 사람들을 동원하거나 아예 명의를 도용한 정황이 뚜렷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정화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고, 행정예고 기간에 의견을 적극 제출한 것도 반대 쪽이었다. 그러나 교육부가 3일 발표한 의견 취합 결과는 찬성 15만2805명, 반대 32만1075명이었다. 의아한 결과였는데, 이제 그 내막을 알 만하다. 정부는 반대 의견 접수를 최대한 막기 위해 접수 방식을 이메일이 아닌 일반 우편·팩스로 한정하는가 하면 팩스마저 꺼놓는 꼼수를 부렸다. 그런데도 반대 의견이 쇄도하자 부랴부랴 찬성 의견·서명지를 채워넣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20일이나 되는 행정예고 기간에는 뭘 하다가 마감 직전에야 트럭으로 ‘차떼기식’ 배달을 했을까.
중대 사안에 대해 행정예고를 통해 국민 의견을 듣는 것은 소중한 민주주의 제도다. 그런데 정부는 의견 접수가 채 끝나기도 전인 2일 오후 국정화 확정 방침을 내놓는 등 행정예고를 요식행위로 전락시켰다. 이에 더해 누가 봐도 조작을 의심할 만한 찬성 의견·서명지를 국민 의견 집계에 반영했다. 사실상 여론수렴 결과까지 조작한 셈이니, 후진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러고도 정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진상을 명백히 가리고 책임자에게는 응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의 온갖 은폐·꼼수는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집필진을 꽁꽁 숨기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예산 내역조차 비밀로 하고 있다. 담당 기구인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은 ‘비밀 조직’으로 활동하다 들켜 혼이 난 뒤 서둘러 공식 조직으로 출범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또 조직의 근거 법령이 미비하다는 논란을 겪었다. 이렇게 숱한 비정상적 방식을 동원해 역사교육을 정상화하겠다니 기가 찬다.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