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대응과 핵 문제 해결 노력에서 중국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한·미가 주도하는 중국역할론을 두고 중국 쪽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는 북한을 고려하는 중국의 기본 입장 외에 한·미의 강경 일변도 대북 접근방식에 대한 경계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11일에도 개성공단 남쪽 인력 제한을 더 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세 가지 원칙의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은 한·미와 거리를 둔 중국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왕이 부장이 8일 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회담에서 재확인한 세 원칙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말한다. 그가 “협상 궤도로 핵 문제 복귀를 추진해야 한다”고 한 것도 대북 압박 강화에 초점을 맞춘 한·미의 움직임과는 결이 다르다. 바꿔 말해 핵실험 이후 한·미의 대중국 외교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태도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중국은 핵실험 직후 이전보다 강경하게 ‘결연한 반대’와 ‘북핵 불용’ 입장을 내놨다. 그러다가 우리 정부의 8일 낮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략폭격기 B-52의 10일 한반도 상공 비행은 한국·미국과 중국 사이의 틈을 더 벌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절제하고 긴장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했고, 관영 언론은 ‘동북아의 평화균형을 깨는 위험한 행동’ 등으로 표현했다. 중국의 대북 압박 강화를 요구하는 중국역할론이 오히려 중국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꼴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핵 문제를 풀기 위한 새 접근은 물론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도 쉽지 않다.
핵실험에 대한 제재는 필요하지만 제재만으로 핵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또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의 적극적인 의지와 중국의 효과적인 중재가 필수다. 지금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미국과 한국이 대북 압박 강화와 중국역할론만을 얘기하면서 중국이 중재 노력을 펼 여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남북 사이 작은 충돌이라도 생긴다면 이런 구도는 한층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이 대북 핵 대화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지금처럼 전략적 판단 없이 분풀이식 강경 대응만 해선 한반도 긴장 고조와 핵 문제 악화를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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