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막가파식 공천이 결국 당 대표가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까지 번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4일 유승민·이재오 의원의 지역구 등 5개 선거구에 대해서는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최고위원회가 의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 대표가 ‘진박’ 후보들의 공천에 도장 찍기를 거부하면 그 후보들은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의 공천을 거부하면서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가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김 대표가 뒤늦게 반기를 든 결정적 계기는 유승민 의원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 선언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유 의원 축출 과정은 치졸함과 비겁함, 억지의 연속이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정치보복이다” 등의 유 의원의 탈당 선언문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친박계는 유 의원이 탈당하자마자 보란 듯이 ‘진박’인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이 지역에 단수추천했다. 그리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유 의원을 향해 “우리 당을 모욕하고 침을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났다”고 적반하장격인 비난을 퍼부었다.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도 싸늘하기만 하다. 보스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의원의 목숨을 집요하게 끊어놓는 야비한 행태를 보며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직접 표로 새누리당의 오만방자한 공천을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친박계 완장부대의 전횡에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끌려온 김 대표가 뒤늦게 칼을 빼어든 것은 이런 민심의 동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 대표가 진박 후보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어주길 거부하는 이른바 ‘옥새 투쟁’을 시작했지만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갈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한동안 저항하는 시늉을 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김 대표의 기존 행태도 미덥지 않지만, 목표 관철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친박계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최고위원회를 해산하고 새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억지편법으로 공천을 강행하는 방안 등 각종 시나리오도 분출한다. 친박계가 또 어떤 묘수와 꼼수로 막장 드라마를 이어갈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새누리당을 이런 아수라장으로 만든 장본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에게 묻는다. 집권여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아직도 경제 살리기니 민생이니 안보니 하는 말이 나오는가. 결자해지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의 새누리당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단 한 사람, 박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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