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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야도 부산’의 부활이라꼬? / 여현호

등록 2016-04-19 19:10

이번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많이 부끄럽기도 했다. 명색이 정치부장 출신인데 선거 예측은 엉터리였다. 새누리당이 160석, 많게는 180석을 넘길 것이라고 섣불리 전망했다. 고향인 부산·경남 판세도 “뭐, 크게 바뀌겠어?”라고 속단했다. 잘못 본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틀에 갇혀 있었던 탓이다. 선거는 구도에 좌우된다고 굳게 믿었다. 지역 구도와 후보 간 대결 구도가 승패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생각은 지난 대여섯 차례의 총선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그렇게 총선을 보니 1여다야 선거구나 여당 텃밭에서 당선될 야당 후보는 거의 없어 보였다.

다 틀렸다. 1여다야 지역에선 유권자들이 투표로 단일화를 해줬고, 텃밭은 예전의 그 텃밭이 아니었다. 신화는 곳곳에서 붕괴됐다. 부산이 대표적이다.

야당이 부산 5곳, 이웃 김해·양산 3곳에서 이긴 것은 통일민주당이 부산 15곳 중 14곳을 휩쓴 1988년 13대 총선 이후 최대다. 고작 한두 석 외엔 여당이 ‘싹쓸이’했던 부산이 이렇게 바뀌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변화는 모르는 사이에 바싹 다가와 있었고, 분노와 불안은 어느새 지역 구도의 방파제를 넘고 있었다.

표심은 다양하게 표출됐다. 기권도 하나의 의사표시였다. 부산의 투표율(55.4%)은 대구(54.8%) 다음으로 낮다. 전국 평균(58.0%)보다 한참 아래다. 20·30대 투표율이 19대보다 높아졌고 부산에서도 그런 경향이 확연했다니, 지역의 전체 투표율이 낮아지고 청년 투표율이 높아진 만큼 노·장년층의 상당수가 투표를 포기한 게 된다. 2~3%포인트 사이에서 당락이 갈린 곳이 많았으니 그 영향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모임에 나가보면 ‘새누리당 못 봐주겠다’고 욕하는 50·60대가 많았다. 예전엔 욕하면서도 (여당을) 찍었는데, 이번엔 많이들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실망 표를 야당 지지 표로 돌린 데는 후보자들의 노력이 컸겠다. 19대 때 20%대였던 부산지역 야당 득표율은 30~40%대로 높아졌다. 표가 쉽게 이동할 수 있었던 데는 ‘문재인이 전라도에서 구박받는 걸 보니 야당이 꼭 호남당은 아니네’라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영남의 ‘방어적 보수주의’가 조금 약화된 셈이다. 그렇게 여당 표는 미분을 거듭하고 야당 표는 적분을 이어갔다. 1여다야 따위 구도의 산수에 머물렀던 언론이 몰랐을 뿐이다.

‘구도’가 흔들린 근저에는 ‘경제’가 있다. 이번 총선은 경제위기 앞에서 치른 선거다. 저성장의 늪, 인공지능 시대를 헤쳐나갈 길을 고민하는 중산층에게 노동법 개악 따위 시대착오적인 정책만 내세우는 박근혜 정부는 답답한 무능력자였을 것이다. 서울 강남과 분당의 선거결과가 그런 경우다. 부산·울산·경남의 불안감은 더하다. 이 지역에서 경제위기는 당장 쓰나미처럼 덮치는 현실의 문제다. 지역 경제를 떠받쳐온 조선·철강 등 핵심 제조업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날 앞에 서 있다. 물량이 없어 조선소 도크가 비는 사태가 목전이고, 지역 공단의 가동률은 뚝뚝 떨어진다. 회식이 사라지고 상가도 비어간다. 그런 절박한 상황이 밭을 갈아엎게 만든 것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그래서 이번 선거로 ‘영남 야당세력의 부활’을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 된다. 극심한 가뭄으로 절망적인 농부가 먼지 풀썩이는 논밭을 갈아엎고 구황작물을 심는 심경이 지금 유권자들의 속내일 수 있다. 그러니 야당은 ‘오버’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중앙정치의 낡은 깃발을 휘두를 때가 아니라, 지역의 국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그게 시작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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