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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야당 의원 강제 입틀막’이 환기하는 것들

등록 2024-01-21 16:44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18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도중 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당해 끌려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아침햇발] 손원제 | 논설위원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렇게 후진 나라가 됐나? 지난 18일 대명천지 뭇사람이 보는 가운데 벌어진 ‘야당 의원 강제 입틀막’ 사태가 불러일으키는 물음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다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입이 틀어막히고 팔다리가 들려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일이다. 강 의원이 ‘내 발로 가겠다’며 발버둥쳤지만, 통하지 않았다. 경호원 4명이 달라붙어 행사장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뒤 기어이 문밖으로 내쳤다.

대통령실은 “강 의원이 대통령 손을 잡아당기고 소리를 질러 경호상 위해 행위로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경호 매뉴얼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고 해도, 경호원들이 가로막거나 거리를 띄워놓는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실이 내놓은 관련 영상을 보면, 이 주장은 ‘사실 왜곡’에 가깝다. 강 의원은 짧게 악수하며 뭐라 말을 하지만, 윤 대통령은 별 반응 없이 지나쳤다. 경호 위해로 볼 만한 물리력 행사는 찾아볼 수 없다. 강 의원은 자신을 쑥 지나친 윤 대통령 뒤통수를 향해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집니다”라고 소리쳤을 뿐이다.

경호원들이 제압에 나선 시점도 이미 강 의원을 지나친 윤 대통령이 다른 참석자 3명과 잇따라 악수를 나누는 상황에서였다. 물리적 접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갑자기 강 의원 끌어내기에 돌입한 것이다. 못 들었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대통령을 향해 큰소리를 내자 돌연 물리력 행사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몇걸음 떨어져 있던 김용현 경호처장이 뒤늦게 ‘심기 경호’ 차원에서 강제 진압을 지시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영상 속 김 처장은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강 의원 쪽을 향해 팔을 휘두른다. 경호원을 질책한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 해명이다. 부하를 때려가면서까지 야당 의원에 대한 물리력 행사를 독려했다는 건데, ‘쌍팔년도’ 군대도 아니고 참 눈물겨운 충성심이다.

사실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보며 영상 분석까지 할 일인가 자괴감마저 든다. ‘바이든-날리면’에 이어 또 한번 온 국민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대통령과 인사하며 국회의원이 ‘국정 좀 잘하시라’ 쓴소리 한마디 던진 것일 뿐인데 말이다. 여권에선 이재명 대표 피습 등을 들며 경호를 위해 불가피한 행위였다고 옹호한다. 하지만 이처럼 도를 넘는 폭력적 대응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법 개정에 분노한 시위대와 얼굴에 침을 튀겨가며 언쟁을 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행사 도중 기습 시위에 나선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들을 제지하는 경호원들을 만류하며, 몇분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총기 폭력이 잦은 미국도 위해 행동엔 단호하게 대처하지만, 이번처럼 대통령과 만난 김에 쓴소리 좀 한다고 강압적으로 틀어막는 일은 국회의원은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벌어지지 않는다.

강 의원이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윤 대통령이 어떤 대통령이었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집권 이래 야당 대표와 제대로 대화한 적 없고, 기자회견도 딱 한번 한 ‘불통의 아이콘’ 아닌가. 바깥 목소리에 귀 닫은 대통령을 보며, 신문고라도 울려보고 싶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강 의원이라고 달랐을까.

박정희 시절 차지철 경호실장은 대통령 심기에 거슬린다며 각종 보고를 차단하는 등 국정마저 경호 밑에 뒀다. 전두환 시절 장세동 경호실장도 대통령 심기가 최우선이라며 장관 면담 일정과 내용까지 간섭했다. 자신을 ‘제왕’으로 착각한 독재자와 아부꾼 경호실장의 ‘환장의 조합’은 정권 몰락을 재촉했다. 지금 윤 대통령과 그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경호처장도 비슷한 길을 걷는 건 아닌가.

일론 머스크는 “기술이 자연히 발전한다는 생각은 오산일 뿐, 가만히 둔다면 실제로는 퇴보한다”며, “1969년엔 사람을 달에 보냈지만, 지금은 보낼 수 없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관심과 투자가 없으면 기술조차 잊힌다. 제도와 관행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선진국 소리를 듣는 것도 지속적으로 권위주의에 맞서왔기 때문이다. 지금 수십년 전 폭압적 행태가 재발되는 상황을 내버려둔다면 민주주의는 기술보다 더 빨리 퇴보할 수 있다.

그나마 여소야대인 지금도 이런데, 국회마저 집권 세력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신 바짝 차릴 때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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