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왼쪽)가 지난달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천장 수여식에서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한 진영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사설] ‘비례대표 파동’의 상처 큰 더민주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 파문이 23일 가까스로 봉합됐다. 대표직 사퇴의 배수진을 치고 맞섰던 김종인 대표가 대표직 유지 의사를 밝힘으로써 당은 일단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번 파동을 통해 더민주가 받은 상처는 만만치 않다. 당의 체질이 얼마나 허약한지도 확연히 드러났다.
이번 파동은 근본적으로 ‘구원투수 리더십’에 의존하는 조직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상대권’이 통치하는 조직에서 합의나 설득, 시스템에 의한 운영 등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상대권을 손에 쥔 김 대표는 ‘계몽군주’라는 별명이 상징하듯 강력한 리더십으로 짧은 시간 안에 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으나 전제군주적 리더십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계몽군주는 ‘퇴위’라는 강력한 무기로 당내 반발을 일거에 잠재웠다.
더민주는 이번 비례대표 파문을 수습함으로써 총선까지는 순항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이번 파동의 직접적 계기는 비례대표 의원 공천 문제이지만 갈등의 밑바탕에는 당의 정체성, 이념, 철학을 둘러싼 시각 차이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 대표는 대표직 잔류를 선언하면서도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다”는 등의 말을 했다. 총선이 끝나고 나면 잠복했던 갈등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더민주가 이번 비례대표 파동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당의 장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우선 김 대표는 ‘비상대권’으로 당을 이끌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더민주 구성원들이 그의 사퇴 으름장에 무릎을 꿇은 것은 당장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그의 사퇴가 가져올 치명적 결과를 우려한 결과일 뿐 그의 리더십 전체에 승복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당을 제대로 이끄는 길은 힘들더라도 대화와 설득, 합의의 과정 속에서 찾아야 하며 ‘배수진 정치’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김 대표가 깨달았으면 한다. 이른바 구주류도 김 대표 체제 아래서 당이 짧은 시간 안에 안정을 찾은 의미를 제대로 짚고 당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런 성찰이 없으면 더민주에는 미래가 없다. 당에 잠복한 불씨를 갈등의 불씨가 아닌 새로운 도약을 향한 희망의 불씨로 삼기 위한 더민주 구성원들의 배전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중앙일보 사설] 갈 길이 먼 제1 야당의 정체성 개혁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어제 잔류를 선언했다. 이로써 비례대표 문제로 촉발된 ‘김종인 사퇴 파동’은 일단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제1 야당에서 진보 패권주의와 낡은 진보를 청산하는 데에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저항이 버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진보 패권 세력은 그동안 김 대표의 중도·실용 공천 개혁에 반격하지 않았다. 당장 공천과 총선준비가 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천이 마무리되자 이번에 대거 공세에 나섰다. 문재인 대표 시절 운용됐던 혁신위, 친노 성향의 당내 을지로위원회, 외곽에서 당을 지원하는 원로 원탁회의의 주요 인사들이 김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정봉주 전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 같은 외곽 그룹도 가세했다. 특히 강씨는 김 대표에게 끌려가는 당에 “미치려면 곱게 미치라”는 극단적인 매도를 퍼부었다.
이들이 막판에 공세를 멈춘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들이 지지하는 시민단체·운동권 출신 수명이 비례대표에 들어가는 실리가 확보됐고, 당장 김종인 대표의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총선 후 새 지도부 선출과 대선후보 경쟁국면이 시작되면 이런 위장된 수습은 깨질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의 공천 과정에서 이해찬·전병헌·정청래·강기정·신기남·노영민 등 진보 패권주의 핵심 다수가 탈락했다. 하지만 친문재인 세력은 대부분 재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약 500명의 중앙위원회, 대의원·핵심당원 그룹은 여전히 진보 패권주의의 공고한 울타리 안에 있다. 이들이 총선 후 세를 다시 가동하면 김종인의 개혁은 변방으로 밀려날 공산이 크다.
개혁은 힘든 것이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김 대표도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비례대표 순번은 중앙위에서 정한다는 당헌을 중시했어야 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비례 순번을 비대위에 맡겼더라면 그의 개혁은 더욱 힘을 받았을 것이다.
제1 야당의 노선 개혁이 중요한 것은 낡은 운동권식 투쟁의 폐해가 국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리(私利)를 버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직시해야 한다.
[추천 도서]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선방안 시뮬레이션 분석 김종갑 지음, 국회입법조사처 펴냄, 2013년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특성 및 문제점 서술에 기초해서 이의 대안으로 독일식 권역별 명부제와 비례의석 확대방안에 대해 다룬 책이다. 기본적으로 비례의석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설계 및 분석 내용을 담고 있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공천 파동을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근본적 개혁 차원에서 좋은 참고가 될 만한 책이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비례대표제도 비례대표제도는 각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하여 국회의원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보통 단독적으로 채택되기보다 선거구 단위로 후보들이 경쟁해서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과 병행해서 실시되는 제도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에 대별되는 전국구 개념으로 각 선거구에 입후보한 각 정당 후보들의 득표를 전국적으로 합계하여 그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음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제17대 국회 의원 선거부터 지역 단위의 선거구에 입후보한 후보들에 대한 투표와 별도로 정당지지 투표를 실시하여 그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변경, 시행하고 있다. 즉, 자력으로는 국회 진입이 힘든 소외계층이나 약자들 그리고 전문가 집단을 진출시켜 국민들에게 필요한 입법 활동을 하기 위해서 채택된 제도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비례대표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게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보면 여전히 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내 계파간 나눠먹기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영입한 인사들에게 자리를 배분하는 수단 등으로 오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은 각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서 향후 대한민국 정치 개혁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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