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포함한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로써 불확실성은 많이 해소됐다. 하지만 정부 재정으로 국책은행 자본금을 늘리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방식을 놔두고,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기로 하는 등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웠다. 어떻게든 국회 심의는 피하겠다는 꼼수인데, 이런 무책임한 자세로 향후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끌어갈지 매우 걱정스럽다.
정부는 부실기업 여신이 많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5조~8조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면서 우선 올해 1조원만 현물출자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한은이 대출하는 10조원을 주된 재원으로 펀드를 만들어, 두 국책은행의 코코본드(조건부 자본증권)를 사는 방식으로 간접출자하겠다고 했다. 금융시장이 불안한 게 아니고 단지 국책은행의 재무건전성이 나쁠 뿐인데, 증자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로 가져가기 싫어 끝내 한은을 끌어들인 것이다. 한은의 손실 위험에 대해 유일호 부총리는 “정부와 함께 (대출금) 회수 노력을 한다”고만 밝혔다. 이런 한은 대출은 법에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승인한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로 남을 것이다.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그동안 경제장관회의에서 전체 상황을 점검하고 현안을 조정해 왔지만, 사령탑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새 기구의 회의를 주재하는 경제부총리가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데 최종적인 결정 권한을 갖고 책임도 져야 마땅하다. 다만 새 기구가 주로 현재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고, 협력을 얻어야 할 국회를 피하려고만 하고 있으니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국책은행의 인력을 감축하고 급여를 삭감하겠다면서, 경영을 뒤에서 좌우해온 정부 관리들은 정부의 잘못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가 국책은행 자본확충 소요를 5조~8조원으로 본 것은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당장 필요한 돈만 계산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 상황으로 봐선 향후 구조조정 대상과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책은행 증자 소요는 추경이 필요없다면 내년 예산에라도 전액 반영해 정부 책임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고용대책 등 향후 구조조정을 안정적으로 진척시키는 데 필요한 제도적 틀도 정부가 신속히 국회로 가져가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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