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미다’는 ‘바로 합쳐 단정하게’ 하는 행동이다. 대표적인 쓰임이 ‘옷깃을 여미다’이다. 우리는 옷고름을 고쳐 매면서, 그 안쪽에 있는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서 옷깃을 뜻하는 금(襟) 자엔 마음이란 뜻도 있다. 도(度)는 그 크기를 뜻하니, 금도(襟度)란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량’, ‘포용력’이다.
금도는 갖추고 베푸는 것이다. 금도를 갖춘 사람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하다.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선을 지킬 줄 안다.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다. <채근담>엔 지조를 지키는 일을 두고도 “엄정하고 밝아야 하지만, 과격해선 안 된다”는 선인의 충고가 실려 있다.
욕심 많은 늑대가 득실거리는 난세에는 금도를 갖춘 사람이 행세하기 어렵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난세엔 뜻을 펼 수 없다 하여, 초야에 몸을 숨기고 자신을 돌아보는 때로 삼았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모든 이가 금도를 갖췄음을 전제로 한다. 나와 다르더라도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 없이는 민주적 의사 결정이란 애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난세가 온 것 같다. 백남기 농민의 자제들이 연명치료를 마다했다 하여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에 의한 살인’이라고 고발한 이들이 있다. 입에서 칼을 내뿜는 그 살기가 섬뜩하다.
금도를 내다 버리면 천박해진다. 가끔은 거울 앞에 서서 옷깃을 여미는 일이 그걸 막을 좋은 예방약이 된다. 천양희 시인은 “비루하게 굴다 정신 차릴 때, 인파에 휩쓸려 하늘을 잊을 때, 마음이 헐한 몸에 헛것이 덤빌 때” 옷깃을 여민다고 시에 썼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인권결의안 유엔 표결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북한 동향을 파악한 것을 두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북한과 내통했다’고 했다. 천 시인의 시를 새긴 작은 손거울이라도 하나 보내드리고 싶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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