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3일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집행에 나섰다. 유족과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일단 철수했으나 곧 집행을 다시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백씨를 숨지게 한 가해 경찰에 대한 처벌은커녕 사과조차 거부해온 경찰이 유가족들과 ‘협의’ 절차를 거쳤다고 강변하며 서서히 물리력 동원에 나서려는 모양새다.
그러나 부검영장 자체가 ‘빨간 우의’ 가격설을 날조해 발부받은데다 유족과의 ‘협의’라는 조건조차 충족되지 않은 상태여서 강제부검의 법적 근거조차 희박하다. 경찰이 부검영장 세 쪽 가운데 두 쪽만 내놓고 여전히 한 쪽을 감추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온 국민이 영상을 통해 ‘물대포 살인’의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더 이상 무슨 부검이 필요한가. 정부와 경찰은 무리한 부검 강행 시도는 탈법적이고 부도덕할 뿐 아니라 심각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경찰은 9월26일 부검영장이 기각되자 느닷없이 ‘빨간 우의’에 의한 타살 의혹까지 포함시켜 영장을 재청구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12월11일 ‘빨간 우의’로 지목된 남자를 불러 조사할 때도 경찰은 집시법 위반 부분만 묻고 백씨 사망과의 관련성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경찰 스스로 백씨 사망과 무관함을 알면서도 부검영장을 받으려 ‘의혹’을 조작해낸 셈이다. 경찰은 당시 상황보고서에 ‘물대포에 의한 부상’ 등으로 적어놓고도 “파기했다”고 뻔뻔하게 거짓말도 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20년 전의 은폐조작 전통이 아직도 살아 있다니, 그 악행의 대물림에 소름이 끼친다. 최근 <에스비에스>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당시와 동일한 세기의 물대포를 재연한 결과, 철판이 휘어지고 나사가 부러질 정도였으니 백씨가 받았을 충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는 세월호 사건 때처럼 정부 책임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으려 궤변과 무리수를 총동원하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의 지침을 받는 어버이연합처럼 극우단체들은 살인 혐의 고발 등 유족에 대한 혐오를 배설한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등 극단적 정치인들은 이에 가세해 망언을 늘어놓는다. 이런 상황을 조장하는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우리 사회에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유가족 등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주는 패륜적 범죄의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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