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결국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시안인 현장검토본 공개를 강행했다. 교육부는 12월23일까지 여론을 수렴해 국·검정 혼용이나 시범 적용 등도 검토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초기부터 지적했듯이 국정교과서 제도 자체가 세계적으로 극소수 미개한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후진적인 정책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국민적 신뢰를 잃은 국정교과서를 붙잡고 아직도 ‘혼용’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탄핵당한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국정교과서가 지속성을 가질 리도 없고, 전국 시도교육감과 현장의 교사·학생들 반발로 배포 자체도 힘들 것이다. 공연히 혼선만 초래할 뿐이고 그 책임은 박 대통령은 물론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교육관료들이 함께 져야 한다.
예상대로 검토본 내용은 박정희 독재를 합리화하고 친일 부분을 축소하는 등 ‘박정희 미화’에 치중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박정희 정권 설명에 무려 10쪽이나 할애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 등을 부각하면서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은 “기본권은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의해 제한되었다”고 짤막하게 서술하는 데 그쳤다. 5·16 쿠데타 세력의 6개 ‘혁명공약’을 별도 상자에 상세히 소개하는가 하면 새마을운동도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실까지 포함해 자세히 담았다. 독립운동 관련 대목을 줄였을 뿐 아니라 ‘친일파’의 친일 행적 서술을 대폭 줄인 것도 박정희의 친일 행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미화 기조는 중학교 <역사1> <역사2>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대못질하듯이 임기 내 배포를 목표로 ‘복면 집필’을 밀어붙이더니 예상대로 아버지에게 바치는 ‘가족 교과서’가 탄생한 것이다.
뒤늦게 공개된 집필진을 보면 편향성과 편협성이 두드러진다. 일본 강점기가 ‘근대화에는 도움이 됐다’는 뉴라이트적 역사관을 가진 인사들이 근현대사의 대부분을 집필했다니 어떤 교과서일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의 촛불 민심은 친일·독재에 기생해온 반민족·반민주적 부패 기득권세력이 쌓아온 적폐를 쓸어내자는 목소리로 점점 진화 중이다. 그 기득권 구조를 깨지 못하면 역사는 다시 후퇴할 수 있다. 40년 만에 다시 등장한 박정희 미화 교과서는 그것이 기우만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전국의 시도교육감들은 국정교과서 추진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들도 불복종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 더는 추진력을 갖기도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는 꼼수 부리지 말고 ‘박정희 미화’ 교과서를 즉각 폐기해야 마땅하다.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