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검정 역사교과서 혼용 방침을 정한 교육부가 31일 국정교과서 최종검토본을 공개하면서 검정교과서 집필기준도 함께 발표했다. 예상했던 대로 일부 수정이 이뤄지긴 했으나 현장검토본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교과서’로 첫 단추를 끼운 국정교과서이기에 그 한계를 벗어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음은 물론이다.
교육부는 “국민 의견을 수렴해 단순 오류를 정정하고, 친일반민족행위 구체적 제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서술 강화, 새마을운동 한계 명시 등 내용을 수정 보완했다”고 밝혔으나 시늉에 그쳤을 뿐 박정희 미화, 친일파 축소 등 근본 문제는 그대로였다. ‘밀실’ 집필과 ‘꼼수’ 수정으로 밀어붙인 ‘편향’ 교과서가 국민에게서 버림받고 폐기될 운명에 처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더 이상의 혼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정화 일정을 당장 중단시키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교육부 스스로 국민 의견에 따라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을 고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도 허용하기로 했다면서 국정교과서엔 ‘대한민국 수립’을 고수한 것은 자기모순의 극치다. “국민 시각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 수립이냐 정부 수립이냐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이영 교육부 차관의 궤변이야말로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혼란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정교과서는 유신 시대의 그늘보다 성과를 강조하고 박정희 시대에 9쪽이나 할애하는 등 ‘박정희 미화’ 지적도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친일파 행적도 여전히 구체적 설명 없이 간략하게 처리했고, 재벌 미화 부분도 일부만 손봤다. 그나마 위안부 기술이 다소 늘어난 게 눈에 띈다. 한마디로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은 것 빼고는 수렴된 의견을 반영했다는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 공개된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들 역시 대부분 뉴라이트 성향 등 보수·극우 인사들이었으니 이들이 심의한 교과서 내용 역시 편향적일 수밖에 없음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당장 3월부터 국정교과서로 배우게 될 연구학교 지정 단계부터 갈등이 예상된다. 연말 수능도 문제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부터 “설득하겠다”고 하지만 어림없는 얘기다. 엉터리 교과서에 혈세를 낭비한 것도 모자라 교육 현장에 혼선을 초래해 놓고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으니 그 뻔뻔하고 무책임한 관료주의에 말문이 막힌다.
더 이상의 혼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서둘러 국정교과서 금지 입법을 처리해야 한다.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