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백주에 말레이시아의 공항에서 피살된 사건은 일그러진 북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 정권의 소행임이 확인될 경우 관련국들의 대북정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구촌의 대북 여론은 이미 더 나빠지고 있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15일 “김정남에 대한 김정은의 암살 시도가 5년 전부터 이뤄졌으며, 김정남은 이복동생에게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는 서신까지 보냈다”고 밝혔다. 사실이라면 김정은은 권력 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이복형을 끈질기게 추격해 살해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공분을 살 만한 잔인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은 핵·미사일에 대한 김정은의 집착과 맞물려 북한 체제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국제 여론을 더 키울 수 있다.
북-중 관계도 일정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김정남의 본부인과 아들은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둘째 부인과 아들·딸은 특별행정구인 마카오에서 중국 당국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북한의 체제 변동에 대비한 대안으로 김정남과 가족을 보호해왔다는 설도 있다. 김정남 피살의 배경에 북한의 대중국 불신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앞서 북한의 대표적 친중파였던 장성택 행정부장이 2013년 처형됐을 때도 북-중 관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중국 쪽에서 봐도 김정남 피살은 북한 체제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할 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을 한반도 안보에 큰 영향을 줄 사안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정부 당국자들도 이번 사건과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은 무관한 것으로 본다. 핵·미사일 문제 해법 모색을 비롯한 대북정책 재검토도 차분하게 이뤄져야 한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이번 사건을 이유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조기 배치까지 주장하는 것은 정파적 의도가 강하거나 무지의 소치다. 북한과 관련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안보 공세를 펼치는 것은 실효성도 없이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김정남 피살은 시대착오적인 끔찍한 사건이다. 북한 정권은 자신의 모습이 국제사회의 요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북한의 행태를 바꾸는 데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 전향적이고 효과 있는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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