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살해 사건에 북한인이 대거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음에도 북한의 태도는 뻔뻔하기만 하다. 책임 있는 조처를 취하기는커녕 음모론을 거듭 주장한다. 국제사회 분노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을 북한의 테러로 규정하고 ‘응분의 대가’를 언급한 황교안 총리 또한 문제가 있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20일 “이번 사건으로 유일한 혜택을 보는 것은 한국”이라며 북한 배후설을 부인했다. 그는 지난 17일에도 ‘말레이시아 쪽이 북한의 적대세력과 야합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다. 수사를 진행 중인 말레이시아 쪽이 이날 그를 불러 항의하고 주북한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등 강하게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강철 대사가 주장한 ‘말레이시아 경찰청과 북한 당국의 공동조사’도 지금 북한의 행태를 볼 때 터무니없는 요구다.
이번 사건의 외국인 여성 용의자 2명을 제외한 남성 용의자·연루자 8명은 모두 북한인이다. 이 가운데 살해 현장에 있었던 4명은 당일 탈출해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정도 상황이면 북한 당국이 직접 용의자를 조사하는 등의 행동을 해야 마땅하다. 만약 자신이 살해를 꾀한 게 아니라면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근거를 내놓으면 된다. 하지만 북한은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지극히 무책임하고 시대착오적인 모습이다. 북한의 ‘우호국’인 중국조차 이번 사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불쾌한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최종 확인될 경우 김정은 정권은 ‘위험한 괴물’이라는 국제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황 총리가 이번 사건을 ‘북한 테러’라고 한 것은 섣부르다. 말레이시아 쪽 수사가 끝나지 않았거니와, 북한 소행이더라도 자국 인물에 대한 숙청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들이 이번 일을 ‘김정은 정권의 인권침해’ 측면에서 얘기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황 총리의 발언이 곧 있을 대선을 앞두고 반북 캠페인을 강화하겠다는 거라면 더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은 안보 위험보다는 북한 정권의 비민주적 행태와 연관되는 사안이다.
북한 정권은 이제라도 자숙하는 태도로 사건 진상 규명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국제적 이미지도 개선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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