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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사드 1조 청구서’ 우리 정부는 책임없나

등록 2017-04-30 18:11수정 2017-04-30 18:46

28일 오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성주/연합뉴스
28일 오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성주/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29일 연이틀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10억달러)을 한국이 부담할 것을 주장했다. ‘사드 배치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고, 한국은 부지·기반시설을 제공한다’는 양국 합의사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30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를 하고 사드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양국 합의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국민들은 전혀 안도하지 못하고 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대해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여망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 국내정치적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를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불렀다. 상대에게 미치광이처럼 비치도록 해 공포를 불러일으켜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발판 삼아 한국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 사드 배치 및 운용 비용이 분담금 증액을 통해 우리 정부에 전가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점점 잦아지고, 대규모화하는 한-미 연합훈련 비용, 칼빈슨 항공모함 등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출동 비용, 미국산 무기 구매액 등도 모두 증액을 압박하는 항목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드 배치 비용이 방위비 분담금 형태로 포함될 가능성도 있지 않으냐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항목이 포함되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으니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다. 애초 연말로 예정됐던 사드가 절차도 무시한 채 서둘러 기습배치된 데에는 김 실장이 올 들어 1월과 3월 두차례나 미국을 방문해 조기 배치를 강력히 요구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이 서둘러 사드 조기 배치를 요구하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건 아닌가. 특히 김 실장의 사드 조기 배치 요구가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라는 점에서 혹 안보 이슈를 부각시켜 탄핵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구심이 인다. 정부는 지난해 7월8일 ‘대통령 결심’이라며 느닷없이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대통령은 탄핵됐고, 김 실장은 1주일 뒤면 물러난다. 남은 건 경북 성주에 기습배치된 사드와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내민 ‘1조원 청구서’다. 누가 책임져야 하나. 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가. 김 실장이 독자적으로 사드 조기 배치 강행을 주도한 것인지, 당시 대통령 업무가 정지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는지 등도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회 청문회라도 열어야 한다. 진상을 제대로 알아야 대책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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