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개혁위원회 활동이 기로에 섰다. 고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살수차 운전 경찰관들이 유족에게 사과하려 했으나 경찰청이 제지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개혁위는 지난달 29일 전체회의에서 이철성 경찰청장 사과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조처와 인권침해 사건 발생 시 후속 조처 매뉴얼 제출을 경찰청에 요구했다. 조처가 미흡할 경우 집단 사퇴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어 11일 회의가 주목된다.
우선 이 청장 스스로 이번 파문의 진상을 솔직하게 드러내겠다는 진정성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살수차 운전 경찰관들이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경찰청 법무과에 밝히자 법무과장 등이 이를 제지했다고 한다. 법무과장은 “사과 의미로 청구인낙을 하게 되면 형사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숙고하라고 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들의 상관인 서장까지 동원했고, 이 청장 역시 개혁위 전체회의에 나와 만류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힌 점 등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경찰 차원에서 잘못된 판단이나 지시가 있었다면 이제라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이외에 해법은 없다. 2년여 끌어온 검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살인 물대포’ 발사 당시는 물론, 이후 엄마부대 등 우익단체를 동원해 고인과 유족을 모욕한 배후까지 낱낱이 드러내 책임을 묻게 해야 그나마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
‘백남기 사건’은 이 청장이 사과한 박종철·이한열 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찰폭력의 상징이다. 이를 대하는 경찰 태도가 개혁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이 사건이 경찰의 폭력 불감증, 낮은 인권의식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모든 해법의 필요조건임은 물론이다.
경찰은 최근까지 변호인 접견 보장과 체포·구속 최소화, 집회·시위 보장 등을 담은 개혁위 권고안을 전면 수용하는 등 진일보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태도마저 수사권 확보를 위한 눈속임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정권 교체기마다 경찰이 과거사를 조사·반성하고 개혁 조처를 내놓았음에도 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몽둥이’란 평가를 받아왔는지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그래야 수사권을 맡길 만하다는 국민 신뢰도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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