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탄생 200돌을 맞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인간 해방의 위대한 투사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아버지에게는 평생 감추어야 했던 비밀이 하나 있었다. 1851년 여름 망명지 런던의 누추한 딘 스트리트 28번지 비좁은 집에서 태어난 남자아이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가 결혼할 때 데려온 하녀 헬레네 데무트였고 아버지는 마르크스였다. 사생아의 존재는 마르크스에게도 다른 가족에게도 함구의 대상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할 경우에도 이 사실은 암호문처럼 모호하게 처리됐다. 예니는 훗날 쓴 회고록에서 이때를 이렇게 기록했다. “여기서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1851년 초여름에 우리의 걱정을 가중시키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
일부일처제의 부르주아 미덕 안에서 산 마르크스에게 이 아이는 가족 안으로 난데없이 들어온 이방인, 자신이 만들어냈지만 받아들일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였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마르크스의 영원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였다. 독신이었던 엥겔스는 사생아를 자기 아이인 것처럼 꾸며 다른 노동자 가정의 양자로 보냈다. 마르크스의 가족은 엥겔스의 도움으로 부르주아적 정상성의 울타리 안으로 안전하게 돌아갔다. 헬레네는 그 집의 하녀로서 평생을 살았고 마르크스 가족이 묻힌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 함께 묻혔다.
과거 사회주의 진영에서 나온 마르크스 전기들은 이런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기리는 ‘성인전’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추문을 입에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마르크스의 신성한 지위가 무너지고 난 뒤에야 ‘인간 마르크스’를 조명한 전기 속에 이 비밀이 편입됐다. 마르크스가 오늘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예니와 헬레네는 또 어떻게 했을까?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