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해온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6일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한 병보석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심급별 구속기간(6개월) 안에 심리를 끝낼 수 없으니 풀어달라는 주장은 받아들였다. 다만 주거 제한과 접촉·통신 제한의 조건을 붙였다.
재판부가 밝힌 대로 무죄 추정은 형사법의 대원칙이나 갑작스러운 석방이 그간 수사·재판 과정을 지켜본 국민 법감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전 대통령 쪽이 항소심에서 갑자기 무더기 증인을 신청하는 등 사실상 재판 지연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재판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1심 재판부가 인정했듯이 이 전 대통령은 20억원에 국회의원이나 금융사 회장 자리를 팔아넘기고, 소송비 59억원을 대기업에 떠넘기는 등 대통령 자리를 이권에 이용한 파렴치한 뇌물 범죄의 당사자다. 정계 입문 이래 20여년간 다스 실소유주 사실을 감춰 국민을 속이고도 여전히 반성은커녕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재판부는 관할 경찰서장의 감시와 재판부의 점검회의 등 3중의 감시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런 범죄 혐의와 그간 법정 안팎에서 보인 행태를 고려하면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자칫 전직 대통령이란 신분 때문에 자유로운 증언이 훼손된다면 국정농단 단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섣부른 ‘박근혜 사면’ 주장도 이런 우려를 부추긴다.
최근 국정농단·사법농단 사건 재판이 몰리면서 피고인 구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적잖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석은 기각됐으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보석 결정이 ‘유권무죄’의 잘못된 메시지로 해석되지 않도록 공정·엄정 재판을 향한 재판부의 의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