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이 2018년 10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을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명진 기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1일 강제징용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 자산 매각 가능성에 대비해 “모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구체적인 대응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한국 제품 관세 인상, 송금 중단, 비자 발급 요건 엄격화 등을 예상하고 있다. 스가 장관의 발언은 전범기업인 일본제철(전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우리 법원의 압류명령 효력이 4일부터 발생하는 것을 앞두고 나왔다. 일본 정부가 이런 식의 대응 카드를 꺼낸다면 한-일 관계는 더욱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예견된 파국을 막기 위해 두 나라 정부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는 한-일 관계의 시한폭탄으로 꼽혀왔다. 지난해 징용피해자 변호인단이 일본제철 등의 자산 매각을 신청할 때부터 일본 정부 고위직 인사들은 비자 발급 제한이나 무역 제재와 같은 보복 조처를 언급해왔다. 지난달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은 “현금화가 되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8월엔 한-일 관계에 변수가 될 사안이 여러 건 예정돼 있다.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15일 광복절,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2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 기한 등이 있다. 한-일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한 민감한 시기에 스가 장관이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내보이지 않고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점은 유감스럽다.
한-일 외교당국은 징용피해자 배상을 위한 현금화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자는 데는 뜻을 모았지만, 뚜렷한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 두 나라의 기본 인식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한-일 관계 갈등을 일부러 키워 일본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선 한국 대법원 판결과 두 나라 여론을 존중하면서 양국이 상호 수용 가능한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법원이 내린 일본제철 국내 자산 4억원에 대한 압류명령 효력은 4일 0시에 발생한다. 일본 외무성과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소송 진행에 협조하지 않고 있어 압류명령 대상인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아직 ‘외교의 시간’은 남아 있다. 두 나라 정부는 감정을 자제하고 다양한 외교채널을 활용해 차분하게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