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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여성인권 고려 없이 ‘낙태죄’ 처벌 고수하는 정부

등록 2020-10-07 18:34수정 2020-10-08 15:06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에서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들과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에서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들과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임신 기간에 따라 여성의 임신 중지 허용을 제한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7일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대체입법안에 낙태죄의 사실상 존치를 명시한 것이다.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낙태죄 처벌을 실질적으로 부활시킴으로써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되레 뒷걸음질 치게 될까 우려스럽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을 보면 임신 14주 이내는 여성의 선택에 따른 임신 중지가 가능하지만 이후 24주까지는 이전처럼 예외 사유가 있을 때만 허용한다. 성폭행, 혈족·인척간 임신, 건강 문제 등 기존 낙태죄의 예외조항 외에 ‘경제·사회적 이유’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여성계는 임신 주수를 형사처벌의 기준으로 삼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을 줄기차게 해왔다. 임신 주수를 판단하는 생리주기가 개인별로 다른데다 산부인과에서 태아 크기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산모나 태아의 영양 상태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명확할 수밖에 없는 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해 억울한 범법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임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미성년자는 신체적 변화가 뚜렷해질 때에야 임신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앞서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도 이런 문제를 우려해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 중지 허용 여부를 달리해선 안 된다”며 전면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개선안에 추가된 경제·사회적 이유도 모호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임신 중단에 대한 여성의 인식과 경험 조사’에 따르면 임신 중단 경험 여성의 97%가 불법적 임신 중단을 했고 이 가운데 절반이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학업이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등 사회·경제적 이유를 꼽았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를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국가에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근거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더불어 평등권, 건강권, 모성보호권 등 기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여성만 요구하는 의료 서비스를 범죄시하는 것을 여성에 대한 차별로 본다. 이에 따라 2018년 한국 정부에 낙태죄 전면 폐지뿐 아니라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할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정부가 처벌의 기준만 내놓은 것은 무책임하다.

정부는 입법 기한이 아직 남아 있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를 개정안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임신 및 임신 중단, 출산과 양육에 이르기까지 재생산 과정 전반에 대한 정보와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일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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